■이 시에 적힌 문장들은 모두 앞뒤가 이치상 어긋나 있다. 첫 문장부터 그렇다. '그는 출발했는데, 출발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그는 지나치게 많이 걸었는데, 한 발짝도 걷지 않고 있다'. 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데 눈길을 좀 더 진득하니 두고 글자들을 따라가 보면 의외의 진실들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양분돼 있다. "아까와 방금"의 '그'로 말이다. "그는 아까 기침을 했고 방금 기침이 멎었다". 즉 아까 기침을 하던 그와 지금 기침이 멎은 '그'는 "다르지 않은 만큼 다르다"는 게 이 시의 주된 논리다. 그리고 이 시의 배리는 우리를 전혀 뜻하지 않은 영역으로 문득 이끈다. "무화될수록 무화되지 않는" 곳이 그곳이다. 그곳은 "보는 것의 너머"에 있으며 "존재하지 않을수록 충만"한 "흔적"들로 가득한 곳이다. 우리가 정말 도달하고 싶은 "집"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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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절반 "어버이날 '빨간날'로 해 주세요"…60대...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