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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나랏돈은 주인 없는 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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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나라 살림을 꾸려갈 새해 예산안을 놓고 국회 심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400조원이 넘는 막대한 규모니 그 심의는 보통 일이 아닐 터다. 한데 언론에 보도되는 심의 과정을 보면 입맛이 쓰다. 매년 되풀이되는 의원들의 생색내기, 지역구 챙기기 관행에 남북대화를 빌미로 한 깜깜이 예산까지 끼어드는 모양새여서 가히 점입가경, 가관이라 할 만하다.

지난 13일 현재 국토위 등 5개 상임위에서 정부가 제출한 내년 세출 예산안에 4조원 가까이 늘려 예결위로 넘겼다는 소식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등이 예비심사를 마치면 올해 상임위에서 예결위로 넘길 예산 증액분은 1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상임위 예비심사는 의원들이 지역구 민심을 의식해 '일단 노력의 흔적을 기록에 올리자'는 심사가 작용한 탓이 크다. 지역구 민원이 몰리는 상임위 중심으로 거액의 증액이 이뤄진 것이 이런 심증을 더한다.
하지만 이는 의회민주주의의 본분을 잊은 행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본래 영국ㆍ프랑스에서 의회는 왕의 일방적 세금 부과를 막아 정부를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또한 의원은 지역구에서 선출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신분이다. 명분이야 어쨌든 자기 지역구를 챙기려는 예산 증액은 국회 본연의 임무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다.

의원들만 문제는 아니다. 통일부는 남북 철도ㆍ도로 예산 3526억원을 비공개로 넣었다. 야당에서 이를 문제 삼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북 간 철도ㆍ도로 사업이 시작된 2000년 이후 비공개로 처리돼 왔다"고 설명했다. 한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관행'과 '적폐'를 가르는 기준이 궁금해서다.

그런가 하면 국방부는 '9ㆍ19 남북 군사합의' 이행을 위해 예산 101억원을 늘려달라고 뒤늦게 국회에 요청했다. GP 시범 철수 등을 위한 비용이라지만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가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는 경우'라며 국회 동의 없이 남북 군사합의를 비준한 것이 지난달 23일이다. 불과 2주 만에 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비용 101억원을 요청한 것은 그쯤이야 '중대한' 부담이 아니라 여겨서인지 묻고 싶다.
물론 상임위 차원의 예산 증액은 구속력이 없고 예결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무리수들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의 지적이다.(이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마이클 부스 지음ㆍ글항아리)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선택할 자유'란 책에서 그는 돈 쓰는 방법을 이렇게 나눴다. 본인 돈을 본인에게 쓴다, 본인 돈을 다른 사람에게 쓴다, 다른 사람 돈을 본인에게 쓴다, 다른 사람 돈을 다른 사람에게 쓴다, 네 가지 유형이다. 이 중 첫 번째, 두 번째는 문제없다. 평범한 사람들이나 '천사'인데 이런 이가 많을수록 사회는 살 만해진다. 세 번째는 '내 돈은 내 돈, 남의 돈도 내 돈'하는 사기꾼 등 범죄자들의 행태라 하겠는데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선 마땅히 규제해야 한다.

네 번째가 골치다. 대부분 명분은 그럴 듯하다. 약한 사람, 뒤떨어진 곳 챙긴다니 말이다. 그러니 반대하고 따져들기가 마땅찮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뒷일이야 어찌 되든 우선 생색을 내서 표나 인기를 얻으려던 정치인, 위선적 선동가들이 즐기던 수법이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혹은 언젠가는 값을 치러야 한다. 세금으로 이뤄진 나랏돈은 '임자 없는 돈'이 아니다. 예산을 짠 정부든, 이를 심의하는 국회의원이든 설마 '일단 쓰고 보자'는 심사는 아니길 바란다. 부디 전체를 보고, 공정성과 효율성을 따졌으면 좋겠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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