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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공터/박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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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 골목이 나가는 골목을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안 닿는 데를 긁으려고 억지로 팔을 꺾으면 거기, 공터를 견디는 공터가 있다

저녁은 공터의 전성기, 새 떼들이 공중을 허물어 공터 한켠에 호두나무 새장을 만들고 있다 묶은 우유팩의 묵은 날짜 같은 상한 얼굴들이 꾸역꾸역 저녁을 엎지른다
헐거워진 몸을 네 발에 나눠 신은 개가 느릿느릿 공터를 가로지른다 과연 공터가 공터인 건, 공터가 한 번도 공터 밖으로 나가 본 적 없어서다

공터에 왜 아이들이 없지? 그 많던 돌멩이들이 다 어디로 굴러 간 거야? 아무도 묻지 않는 그곳이라는 저녁, 빨랫줄의 빨래가 마르듯이 공터가 마르면서

침묵하는 서랍이다가, 무표정한 유리창이다가, 필사적으로 공터가 되려는 공터가 처음 보는 이의 등처럼 어둑어둑 저문다
[오후 한 詩]공터/박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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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치기하는 소리, 다방구하는 소리, 무찌르자 공산당 몇천만이냐 고무줄놀이 하는 소리, 얼레리꼴레리 누구 누구느은― 놀려대는 소리, 빨간 코피 같은 울음이 터지는 소리, 그러다 봉구야아 혜경아아 밥 먹어라아― 엄마들이 골목길 끝에서 부르는 소리, 내일 또 놀자, 그래 놀자, 안녕, 안녕, 자꾸 아쉽기만 한 소리. 저물 것 같지 않던 공터가 마침내 저물면 담벼락 아래 강아지풀 혼자 안녕, 안녕, 칭얼대는 소리, 달님이 별빛 부스러기들을 데려와 토닥토닥 달래주는 소리. 마음이 허할 때면 눈을 꼭 감고 가만히 놀러가 한참 앉아 있다 오는 그곳, 이젠 세상에도 없는 그리운 공터.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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