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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핵개발 막은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별세...'거너사이드 작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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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1943년 나치 독일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거너사이드 작전'에 투입됐던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요원인 고(故) 요아킴 뢴네베르그의 모습과 해당 작전을 영화화한 '텔레마크 요새의 영웅들'에 등장한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의 모습(사진=AP연합뉴스, 위키피디아)

(왼쪽부터)1943년 나치 독일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거너사이드 작전'에 투입됐던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요원인 고(故) 요아킴 뢴네베르그의 모습과 해당 작전을 영화화한 '텔레마크 요새의 영웅들'에 등장한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의 모습(사진=AP연합뉴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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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나치 독일의 핵개발을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거너사이드(Gunnerside) 작전'의 실행 요원이었던 노르웨이의 레지스탕스, 요아킴 뢴네베르그가 9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노르웨이 현지는 물론 전 세계적인 애도가 이어지면서 그가 1943년 수행했던 거너사이드 작전도 다시 재조명받고 있다.
노르웨이 현지 NTB뉴스통신 등 외신들에 의하면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 생존했던 최후의 레지스탕스 대원이던 요아킴 뢴네베르그가 99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가 직접 그를 "우리의 위대한 영웅"이라고 애도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애도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1943년 2월 영국 특수작전수행대(SOE)에서 훈련받은 다른 5명의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노르웨이 서부 텔마르크에 있던 나치 독일의 중수 생산시설에 침투, 이를 폭파시킨 거너사이드 작전에 투입됐던 요원이었다.

보통 핵무기라고 하면 미국과 소련이 주축이 됐던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 2차대전 발발 이전까지 핵무기 개발의 선두주자들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국가들이었다. 특히 최초의 방사성 물질인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퀴리 부부를 배출했던 프랑스는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노르웨이 베모르크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되고 있던 중수를 지속적으로 수입하고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점령된 이후 중수 생산기지 중 하나가 됐던 노르웨이 베모르크 수력발전소 모습(사진=위키피디아)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점령된 이후 중수 생산기지 중 하나가 됐던 노르웨이 베모르크 수력발전소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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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2차대전 발발 이후인 1940년, 프랑스가 전투 6주만에 나치 독일에 함락되고 노르웨이 역시 함락되면서 독일이 다량의 중수를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중수는 핵무기의 기본물질인 플로토늄 생산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물질이었기 때문에 나치 독일이 이를 대량으로 확보할경우, 연합국 측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게 됐다. 이에따라 연합국 작전본부는 노르웨이의 중수 생산시설들을 파괴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고, 1942년 프레시맨 작전(Operation Freshman)을 펼쳤으나 작전에 실패했다.

하지만 연합국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중수 파괴 작전을 시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듬해인 1943년 2월,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영국군이 합세해 거너사이드 작전을 추진했다. 이 작전은 대대적 성공을 거둬 독일군 점령하에 노르웨이에서 생산됐던 중수 500kg이 모두 파괴됐고, 중수 생산을 위한 필수 장비들도 상당수 파괴됐다. 이는 2차대전의 향방을 가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거너사이드 작전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사진=위키피디아)

거너사이드 작전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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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파괴된 중수 생산 시설이 2차대전 동안 제대로 복구되지 못하면서 나치 독일은 핵 반응로를 가동시키기 위한 중수를 제때 확보하지 못했고, 핵무기 개발은 그만큼 뒤쳐질 수 있었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해 나치독일이 미국보다 먼저 핵개발을 했다면, 전쟁의 향방은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으로 현대 역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당시 독일은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V2를 보유하고 있었고, 여기에 핵무기를 탑재, 핵탄두 미사일을 개발했다면 연합국의 승리가 어려웠을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독일군 중수 파괴 작전은 훗날 1965년, '텔레마크 요새의 영웅들'이란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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