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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관료여, 영혼을 거래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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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은 유한하고 경제는 틀림없이 영원하다. 그 가운데서도 기획재정부에서 봉직하는 여러분은 정론을 향해 정도로, 중용의 자세로 가줘야 한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재부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이다. 현장에서 내가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기재부 차관을 지낸 선배로서 김 의원의 가슴속을 메웠을 비장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닥치고 있는 동안 후배 공직자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반문이다.
한 신문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 1% 성장 함정에 빠지나'라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다. 네 명의 대통령이 바뀐 과거 20년 동안 한국 경제가 '쇠락의 소용돌이(Downward Spiral)'에 빠져들었음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물론 기재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 운용을 책임지는 기재부가 과연 제 역할을 했는가라는 의문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한국 경제에는 이미 경제가 흥하건 망하건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계층, 즉 경제 현실에서 '비동조화(Decoupling)'된 계층이 형성돼 있다. 소득 상위 10% 이내의 자산소득가들이 그렇고, 하청 중소기업 직원들에 비해 호의호식하는 대기업 노조원들이 그렇다. 염려스러운 것은 관료 사회에서조차 비동조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관료들이 박봉에 시달린다는 것은 이미 사실이 아니다. 급여의 경쟁력이 높아진 데다 각종 복지 혜택까지 감안하면 비동조화의 유혹은 강하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신의 직장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관료들은 비동조화의 길로 접어든다.

이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권의 눈으로만 현실을 본다. 그래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가 하는 말이 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이 말은 시키는 대로 하면 영혼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진짜 영혼이 있는 공무원들은 떠나라는 것이다.
공무원에게 진짜 영혼은 무엇을 의미할까. 공무원의 첫 번째 직무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공무원 헌장에 따르면 헌법 가치의 실현, 국가에의 헌신, 국민에의 봉사 등 세 가지다.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인용하면 '애민(愛民)'이다. '높은 상관의 명령이 법에 어긋나거나 민생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자신의 뜻을 굽히지 말고 꿋꿋이 지켜야 한다.' 이것이 목민관의 영혼이다.

5년 단위로 정권이 바뀌는 현실에서 보면 관료는 국가의 영속성을 확보하는 최전방의 파수꾼이다. 집권 세력이 권력의 유지와 확장에 눈이 멀어 헌법 가치, 국가 헌신, 국민 봉사의 정도에서 벗어난다면 이를 잡아줄 유일한 집단은 공무원밖에 없다. 공무원 각자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영혼'이 있는지. 강요된 영혼이 아니라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영혼이 있는지.

새로이 취임한 김주원 원불교 종법사가 두 가지를 말했다. 무아봉공(無我奉公)과 절처봉생(絶處逢生)이 그것이다. 원불교 정신에 대해 한 말이지만, 오늘날 공직자에게 귀감이 될 말이기도 하다. 나를 버리고 공공에 봉사하라, 공직자로서의 영혼을 거래하지 말라는 뜻이다. 영혼을 거래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신의 직장을 버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절처봉생이다. 스스로 길을 끊는 순간, 자유로운 영혼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다만 떠나되 원망의 감정을 갖지 말라. 원망의 감정을 갖게 되면 정권이 바뀌고 다시 중용되더라도 남의 장단에 칼바람을 추는 불령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자신의 영혼을 보전하기 위해 쿨(cool)하게 떠나라. 관료의 기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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