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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줄이자던 방과후학교"…강사료 떼먹고 폐업하면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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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 전환 후 임금체불·재료비 부풀리기 등 부작용 심각
폐업 후 재입찰 나와도 속수무책 … 피해는 학부모·학생 몫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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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방과후학교 바둑 강사인 김모 씨는 지난해 서울 J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눠준 교재 대금을 받지 못했다. 학부모들은 교재비를 정상적으로 납부했지만, 방과후학교를 위탁 운영하는 B사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강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비용을 차일피일 미루다 급기야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B사의 대표는 올해 업체 이름을 바꿔 다시 방과후학교 위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서울 O초에서 로봇교실 수업을 맡았던 박모 씨는 마지막 분기의 강사료와 교구비를 받지 못했다. 박씨가 소속된 C방과후학교 위탁운영업체는 대표가 여러 명이었는데, 이들 대표 간에 분쟁이 생기면서 미지급된 강사료와 교구비를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지만 수취인 불명으로 이젠 대표와 연락도 닿지 않는다. 6년간 방과후학교 강사로 활동했던 박씨는 결국 불안정한 근로 환경과 열악한 처우를 견디다 못해 학교를 관두고 현재는 개인 사업을 운영중이다.

#방과후학교 강사 경력 10년차인 이모 씨는 올 들어 자신이 소속된 W 위탁업체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새 학기(분기) 수업을 시작하면 4주 후부터 지급하기로 계약한 강사료가 일주일씩 늦어지더니 지난 7월분 강사료는 이번 추석 연휴 전날에야 입금이 됐다. 최근에는 W사가 난데 없이 자체 쇼핑몰을 만들어 강사들에게 회원 가입을 종용했고, 교실에서 사용할 쓰레기봉투마저 이곳에서 구입하라고 강요하는 탓에 난감해 하고 있다.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지역별 교육 격차를 해소하자며 도입한 방과후학교가 최저가입찰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부실한 위탁운영업체 관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방과후학교 사업이 위탁업체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수업의 질이 낮아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의 경우 통상 일주일 100분 수업을 기준으로 3개월(1분기)에 7만5000~9만원의 수강료를 받고 있다. 책이나 교재가 필요한 수업은 분기당 1만원 내외, 요리나 로봇과 같이 특별한 재료가 필요한 수업은 6만~15만원의 재료비가 추가된다. 대부분 강사가 교재나 재료를 구입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학부모들은 매 분기 수강료와 재료비를 학교에 지불한다. 학교 행정실에서는 이 중 방과후학교 시설사용료 등을 제외한 금액을 모두 강사에게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매번 학생들이 원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수요를 조사하고, 이에 맞춰 강사를 채용하고, 학생들을 관리하거나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일 등이 학교에 부담이 되다 보니 이를 대신할 위탁운영업체가 등장했다. 최근 6~7년간 직접 강사를 채용하는 대신 위탁업체를 정해 방과후학교 운영을 맡기는 학교가 많아진 이유다.

이들 위탁업체들이 강사료의 15~20% 가량을 수수료 명목으로 떼면서 강사들이 받는 임금은 낮아졌지만, 늘어난 위탁업체만큼 강사들이 개별적으로는 수업을 확보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위탁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제대로 된 수업 컨텐츠나 강사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나왔다.

여기에 교육부가 2016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위탁업체를 선정할 때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한 2단계 입찰 방식을 적용하도록 하면서 저가낙찰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J 위탁업체 관계자는 "1단계 자격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2단계에서 무조건 최저가 업체가 낙찰되다 보니 프로그램의 질이나 강사의 실력보다는 가격을 낮추는 게 더 중요해졌다"며 "그만큼 강사비를 줄이지 않으면 운영할수록 손해를 보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피해는 곧바로 방과후학교 강사들에게 미쳤다. 영세한 규모의 위탁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강사료나 재료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잠적해 버리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일부 위탁업체의 경우 저가 입찰로 인한 손해를 메우기 위해 재료비를 부풀리거나 교재 장사에 열을 올리고, 전직 교장·교감 출신을 채용해 학교를 상대로 영업을 하기도 한다는 게 강사들의 설명이다.

교육부나 각 시·도교육청은 방과후학교 위탁업체가 몇 곳이나 되고, 어떤 강사들을 채용하고 있는지, 그 업체들이 어떤 이력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강사들의 임금체불과 같은 문제가 문제가 발생해도 관련 법규정이나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박모 강사는 "최근에도 W 위탁운영업체 소속 강사들이 재료비가 지급되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지금까지 피해가 알려진 학교만 20곳에 이른다"며 "문제는 이런 부실업체들이 폐업하고 이름만 바꿔 단 채 이듬해 또 다시 입찰에 나와도 이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과후강사노동조합 김경희 위원장은 "초등 방과후학교는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키우고 맞벌이가정의 자녀를 안전히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며 "학교 교육이라는 공적인 영역에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놓고 차후 관리도 하지 않는 것은 교육당국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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