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매해 추석마다 차례상 규칙을 알려주는 기사들이 쏟아지곤 한다. 일반 상식처럼 알려진 차례상 규칙에는 어동육서(魚東肉西ㆍ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ㆍ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좌포우혜 (左脯右醯ㆍ육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조율이시(棗栗梨枾ㆍ왼쪽부터 대추ㆍ밤ㆍ배ㆍ감), 홍동백서(紅東白西ㆍ붉은 것은 동쪽 흰 것은 서쪽) 등이 있다.
정작 조선시대에 차례상은 매우 간소하게 차리거나 생략했다고 알려져있다. 차례 자체가 유교와 거리가 먼 풍습이기 때문이다. 차례(茶禮)는 글자 그대로 원래 제사상에 차와 다과를 올리던 풍습이다. 유교가 아닌 불교에서 넘어온 풍습으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정착됐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주로 계절과 절기마다 제사를 주로 치렀으며, 차례상을 올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차례상은 불필요하다고 제한해야한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한다.
유교에서 진짜 중요시 여긴 제사는 각 고인의 기제사였다. 그러다보니 제사상은 벼슬의 고하나 학식의 깊이를 떠나 남의 집에서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든 일절 관여치 못하게 돼있었다. "남의 집 제사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는 말도 그만큼 큰 실례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제사는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위주로 차리게 돼있어 별다른 법칙이 없기 때문에 과거 예법서에서도 별다른 지침이 없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