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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욕심 버리니 숨겨진 매력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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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당' 지관 박재상役 조승우

[라임라이트]욕심 버리니 숨겨진 매력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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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우장훈 검사처럼 한발 물러선 연기…드러나진 않지만 미묘한 변화 통해 흐름 좌우
그동안 배역보다 뒷전, 하지만 꼭 필요한 역할
차별화 된 연기 고민, 멜로물 출연에도 영향…나이 들수록 작품의 진정한 의미 찾기에 재미

"김좌근(백윤식)이 저리 득세하게 된 것은 아비인 김조순의 묘를 이장한 후부터야. 단지 거기가 어디인지 모를 뿐이지." "어찌어찌해서 그 묘를 찾는다고 치자. 그럼 어쩔 셈이야?" "자손 대대로 해악이 내리도록 그 뼈를 참시할 것이네." (중략) "이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게 나한테 던져진 업보일세."
영화 '명당'에서 지관(地官) 박재상(조승우)의 마음은 복수심으로 가득하다. 13년 전 순조(이윤건) 앞에서 모두가 명당이라고 한 익종(김민재)의 장지를 반대했다. 이 때문에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김성균)에게 처자식을 잃었다. 장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는데 혈안이 돼 있다.

조승우는 앙갚음을 다짐하는 박재상을 뜨겁게 그리지 않는다. 단짝인 구용식(유재명)에게만 속내를 털어놓을 뿐, 차분하고 인자한 얼굴로 일관한다. 김좌근과 김병기, 흥선대원군(지성) 사이에서 욕망의 주체로 부상하지 않는다. 발톱을 감춘 고양이 같은 연기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를 연기했다.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와 부정부패의 온상인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곁에서 그들 못지않은 힘을 보여주되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튀지 않는 연기로 완급조절을 해내며 삼각구도를 팽팽하게 끌고 갔다. 우장훈 검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출세의 욕망을 버리고 정의의 편에 선다. 박재상에게서 이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흥선대원군과 김병기가 왕이 두 명 나온다는 천하 명당의 위치를 알게 되자, 이들을 뜯어말리기 바쁘다. 대의명분을 주창하는 사이 복수심은 사라진다. 역모를 막으려는 충신만 남는다. 조승우의 생각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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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상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사실 눈에 띄는 배역은 아니에요. 장동 김씨 일가와 흥선대원군의 대립에서 축을 잡아주는 역할이거든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묘한 변화로 이들을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재상의 복수심이 대의명분에 그대로 가려져버리는 느낌이 강해요. 그래서 다채로운 연기를 보일 여지가 줄었고, 극의 긴장도 많이 떨어진 듯해요.
"(한참을 생각하다가)인정합니다. 그동안 그려온 배역들에 비해 확실히 뒷전으로 밀린 느낌이 있죠. 하지만 영화에 꼭 필요한 배역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배역들을 조종하지는 않지만, 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고 봐요. 다만 그게 무엇인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감정 변화가 크지 않아서인지 자극적인 배역에서 탈피하고픈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아무래도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배역이 보는 이를 집중하게 하죠. 선한 역할은 그 아우라에 가려지기 쉽고요. 박재상은 장동 김씨 일가와 흥선대원군의 대립에서 어떤 물리적 힘도 발휘하지 못해요. 그래서 더 그렇게 보일 수 있어요. 박재상이 삶의 방향을 확고하게 가리키는 신이 공백을 메울 수 있었는데 편집됐어요. 흥선대원군이 사사로운 옛 감정을 잊고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제의하거든요. 박재상은 거절해요. 흥선대원군은 그 뜻을 존중하고요. 박재상의 올바른 정신을 부각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봤는데, 영화가 너무 길어서 삭제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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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에서 자애로운 목소리로 명당을 봐주는 시퀀스에서는 드라마 '마의(2012년)'에서 연기한 백광현이 떠오르더군요.
"뜨끔하네요. 차별화된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들리거든요. 사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 '라이프'에서 구승효 사장을 연기하면서 드라마 '비밀의 숲(2017년)' 속 황시목이 연상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어요. 늘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발전해야 하고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이런 마음이 새로운 연기를 앞두고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앞으로 관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네요."

-이 정도로 고민이 깊을 줄 몰랐어요.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연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때가 많이 묻었죠(웃음). 이전보다 연기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해요. 그럴 때마다 '나도 별 수 없구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변한건지, 세상이 저를 변하게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조그만 일에도 설레던 제 모습이 사라져서 안타까울 뿐이에요. 많이 무감각해졌어요."

-그래서 근래 멜로물에 출연하지 않은 건가요.
"어느 정도 영향은 있어요. 시청자나 관객의 보는 눈이 높아졌잖아요.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한 연기에 누군가는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걱정하면서 저만의 테두리에 갇힌 듯해요.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버린 거죠.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웠던 때가 가끔은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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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2003년)'을 가리키는 것 같군요.
"맞아요. 그때는 낯간지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오준하를 연기했어요. 젊은 세대에게는 오래된 감성으로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사랑의 가치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작품은 신파적 성격이 강해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도 재미있게 볼 수 있죠."

-다시 출연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도 그런 작품이군요.
"네. 똑같은 연기를 반복하려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에요. 나이를 먹으니까 이전에는 몰랐던 대사의 의미들이 파악되더라고요.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완성된 연기를 해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이 작품을 놓지 못하겠어요."
-그런 작품이 또 있나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요.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친구에게 충고하는 대사가 있어요. '친구여, 나는 사는 동안 내 인생을 직시해왔는데.' 애초 대본에는 '50년을 사는 동안'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어요. 도저히 그 말을 할 자신이 없었죠. 그래서 '사는 동안'으로 바꿨어요. 아쉬움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이해되지 않던 대사들의 뜻까지 알게 되면서 다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죠. 나이를 먹으면서 배역의 고귀한 감정, 나아가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계속 찾게 될 것 같아요. 그야말로 배우만이 얻을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싶네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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