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청사진/이영재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건물을 올리며 네 명이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은 보편적인 각도와 높이의 계단을 밟고
차근차근
벽돌을 소모하고 삽과 젓가락을 소모하고 함바집 할머니를 소모하고 간이 화장실과 병실 침대를 소모하고 짱돌을 무더기로 소모하고
본래 이곳에 있던, 집으로 구축된 집들이 소모되며
누군가 기쁘고
누군가 슬펐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을 올리며 세 명이 더 죽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리자의 관리자의 관리자는
일곱이면 선방이라고 생각했다 일곱이란 숫자는 모나미 볼펜을 한번 안 떼고
그릴 수 있다
청사진처럼
벽돌을 짊어진 저 젊은이는
아직 젊다
젊어서

위험수당을 받으면서도, 일곱 안에 포함된 사람과 같은 솥의 밥을 퍼먹었으면서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절뚝대는 무릎마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회복의 반대편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저 젊은이는
차근차근
젊어서
아직까지 젊음이 소모되지 않아서, 그렇게 차근차근 교육으로 오래 축조돼 온 희망이, 기대가
견고한 척, 휘어지기 직전의 크레인처럼

바람이 불어도
휘청하지 않도록

[오후 한 詩]청사진/이영재
AD
원본보기 아이콘

■섬뜩한 시다. “건물을 올리며 네 명이 죽었”고 또 “세 명이 더 죽었다”라는 사실부터가 이미 충격적인데, 그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선방이라고 생각”한다는 데엔 그저 소름이 끼칠 뿐이다. 그런데 어디 이 시에 적힌 현장만 그러하겠는가. 저 아파트는, 저 상가는, 그리고 저 도로는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서야 우뚝한 것일까. ‘용산 참사’는 지금도 도처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