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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슬픔, 연기가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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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아남은 아이' 김여진

영화 '살아남은 아이'에 출연한 배우 김여진이 2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영화 '살아남은 아이'에 출연한 배우 김여진이 2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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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한 아들 가슴에 품은 엄마 역할…눈물 대신 공감대 확산에 연기 중점
음악·클로즈업 줄이고 있는 그대로…'깊이 있는 배역' 동료들이 부러워해
"좌절하지 않으면 상처는 아물겠죠"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연기하셨는데..."
잠시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마주앉은 배우 김여진(46)이 왈칵 눈물을 쏟아서다. 붉게 충혈된 눈자위를 비벼대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를 잃은'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요." 떨리는 목소리는 영락없는 영화 '살아남은 아이' 속 이미숙이다. 친구 윤기현(성유빈)을 구하고 강에서 익사한 아들 진은찬(이다윗). 미숙은 생글생글하던 모습을 떠올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찬이 보고 싶어." 카메라는 그녀의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용서와 치유를 성찰한다. 조명 방식은 번거롭지 않다. 주연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음악 등의 사용을 최소화한다. 이에 따른 표현의 부담은 고스란히 배우의 몫. 김여진은 "감정이 과잉되는 경우가 잦아서 마음을 추스르려고 애썼다"고 했다. "계속 가슴을 진정시키고 연기하니까 조금 더 담담한 표현이 되더라고요.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보는 엄마의 마음이요."

-이미숙의 고통을 전시하거나 선정적으로 펼치는 느낌이 없어요. 그 덕에 감정의 진폭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듯해요.
"눈물을 보이는 장면 등에 욕심을 낼 작품이 아니었어요. 비극적 상황만으로도 안타까운 마음이 충분히 유발될 수 있다고 봤죠. 관객이 이미숙의 슬픔을 공감하게 하는데 주안점을 뒀어요.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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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에서 흔한 클로즈업 샷도 나오지 않아요.
"화면 구성을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그런 샷이 없어서 감정을 보다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죠.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이미숙을 그릴 자신이 없었어요. 여느 때보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해 보였거든요. 그동안 쌓은 연기 기술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마음먹어야 했어요. 감정이 북받치는 신이 많다보니 흐름을 조율하기가 어렵더군요. 울지 않아야 하는 신에서도 계속 눈물이 났어요. 감정 몰입은 수월하게 해냈지만, 조금 더 담담하게 표현하는 일이 관건이었어요."

-어떤 장면이 감정 과잉의 위험으로 다가왔나요.
"특정 장면이라기보다 아이를 잃었다는 가정 자체가 괴로웠어요. 무섭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상상조차 하기 싫었죠. 그래서 연기할 때마다 계속 눈물이 쏟아진 듯해요. 사실 시나리오 속 지문은 단순했어요. 구체적인 행위나 표현이 생략돼 있었죠. 그런데 이미숙의 상황을 떠올리면 바로 절망과 슬픔이 밀려들었어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겠더라고요. 절대 추억으로 가슴에 묻을 수 없는, 평생 떠안고 갈 듯한 좌절감이었어요."

-촬영 기간 내내 괴로웠겠어요.
"'박하사탕(1999년)'을 찍었을 때보다는 덜했어요. 그때는 밖을 돌아다니지 못할 만큼 후유증이 상당했거든요. 병원에서 치료까지 받았죠. 연기한 양홍자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면서 겨우 치유할 수 있었어요. 김영호(설경구)를 떠나보낸 뒤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죠. 다른 남자를 만나 재혼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했을 거라고 믿었어요."

영화 '살아남은 아이'에 출연한 배우 김여진이 2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영화 '살아남은 아이'에 출연한 배우 김여진이 2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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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박하사탕이 재개봉했는데요.
"2000년 개봉 뒤 18년 만에 다시 감상했어요. 느낌이 색다르더라고요. 양홍자가 겪는 아픔이 견딜만하게 다가왔어요. 그동안 시련을 어느 정도 이겨낼 힘이 생겼나 봐요. 살려고 마음먹으면 어떤 삶이든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문인지 과거 받은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도 받았고요. 함께 관람한 관객들에게 말해줬어요. 인생에서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다음 단계가 있기 마련이니 좌절하지 말라고요.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그 상처가 아물면서 인생은 전환된다고요."

-마지막 신에서 남편 진성철(최무성)과 윤기현의 얼굴은 하늘을 향하는데, 이미숙은 땅을 보고 있어요.
"정확히 자세가 대비를 이루죠. 어떤 의미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에요. 진성철과 윤기현의 생사 여부를 모두 확인하는 데만 주안점을 뒀죠. 이미숙에게서 두 사람의 비중이 동일하게 나타나기를 바랐거든요. 모두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이미숙 역시 간신히 살아남아 숨을 가쁘게 쉬기에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봤어요."

-그 모습이 새로운 삶의 시발점처럼 느껴졌어요.
"윤기현을 구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죠. 세 사람이 모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그들의 고난이 집약돼 있으니까요. 새로운 삶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발버둥이랄까요. 연기하면서도 힘들었어요. 4월경에 강원도 홍천의 한 산골에서 촬영했는데, 물살이 무척 거셌어요. 물도 차가웠고요. 촬영을 마칠 때마다 밖에 준비된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기 바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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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등에 거의 기대지 않아 여느 때보다 부담이 컸을 듯해요.
"감정의 표현이나 흐름보다도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되더라고요.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리듬감을 부여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 때문인지 시사회에서 아버지께서는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정려원(37), 정시아(37) 등 동료 여배우들은 무척 부러워하더라고요. 언제 이런 연기를 해볼 수 있겠냐고 입을 모으더라고요. 맞는 말이에요. 영화나 방송에서 이 정도로 깊이 있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물어요. 배우들은 색다른 표현을 갈구하지만, 그만한 연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은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운아에요."

-여성 배역은 많지만 남성 배역을 뒷받침하거나 이야기를 위해 소모돼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군요.
"아이를 잃은 부모를 그리는 영화만 해도 그래요. 여성 배역의 감정에 이 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많지 않죠. 표현할 여지가 한정되면 슬픔의 표현이 과잉되기 쉬워요. 여러 가지 표현으로 감정을 전달할 길이 막힌다고 할 수 있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여지가 보다 넓어졌으면 해요. 여성 배역들에게서 다양한 표현이 나온다면 그만큼 관객이 공감하는 폭도 넓어질 거예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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