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법과 규칙에 따라 해드릴 수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우긴다. 그러다 화가 나면 기물을 부수고 욕을 하며 멱살을 잡는 것은 기본이다 오물을 가져다 뿌리고 휘발유나 흉기를 가지고 와서 설치는 일도 잦다. 오죽했으면 일부 직원들은 민원실에 배치받게 되면 아예 휴직을 해버린다."
수도권 공무원 A(42)씨의 증언이다. 이처럼 갈수록 '흉포화'되고 있는 민원인에게 일선의 대민원 공무원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21일 엽총 난사 사건이 발생한 경북 봉화군 소천면 사무소처럼 전국에 산재한 3500여개의 읍ㆍ면ㆍ동 주민센터들이 민원 업무를 주로 수행함에도 정부 차원의 대책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원들은 불안에 떨면서 최소안의 안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봉화 엽총 난사 사건처럼 폭행, 난동 등 민원인들의 '흉포화'가 심각하다. 올해만 해도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시 주민센터에서 50대 민원인이 사회복지 공무원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었다. 같은 달 남양주시 한 읍사무소선 40대 민원인이 난동을 부렸다. 그는 "기초수급 생활비가 전월에 비해 줄었다"는 이유로 라이터와 인화물질을 소지한 채 "불 질러 버리겠다"고 협박하다가 제압됐다. 지난 6월엔 충남 태안군에서 60대 민원인이 상담하던 공무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7월 세종시에서 열린 원전 관련 회의장에선 한 지역 주민이 경주시 원자력정책과 공무원을 폭행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별 무소용이다. 정부는 지난 5월 '특이민원'에 대한 대책 발표했다. 성희롱 등에 대해 고발 등 엄단하는 한편 특이민원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게 뼈대였다. 민원공무원의 안전을 위한 대책도 담겨 있었다. 민원실과 상담부서 내에 민원응대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영상정보처리기기(CCTV)를 설치하고 전화녹음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도록 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뒀을 뿐이다. 행안부 담당자는 "국민행복민원실을 선정해 시상할 때 안전 시설 설치 여부를 반영한다"며 "지자체 별로 예산 사정이 차이가 있어서 별도로 대책 시행 여부를 체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용인시는 공무원 피습 사건 직후 보안 인력 배치 등의 안전 대책을 마련했지만 여태까지도 시행되지 않다가 다음달에야 31개 읍ㆍ면ㆍ동과 3개 구청 사회복지과에 다음 달 보안요원을 배치한다. CCTV 설치, 강화유리 안전문 설치 등도 미뤄지고 있다. 성남시ㆍ수원시 등 재정이 풍족한 일부 지자체들가 봉화 엽총 난사 사건 후 안전 대책 마련을 나섰지만, 다른 곳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전국공무원노조는 지난 22일 성명을 내 "정부가 땜질식 처방만을 일삼고 있다. 민원인이 공무원을 폭행하는 것에 대해 처벌한다고 엄포를 놓거나, 청원경찰 등 임시적인 준경찰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공무원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각 기관장들이 당사자로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행정 환경의 변화에 따른 공무원 인력 및 조직 운영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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