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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독서] 아기는 어떻게 헤엄을?…인간 수영본능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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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

수영 코치인 저자, '인간은 언제부터, 왜 수영과 가까워졌을까' 본질적인 궁금증 연구
'수생 유인원 가설' 지지하며 인류 진화를 물과 연결…역사적 사실과 함께 수영의 의미 풀어내


[기자의 독서] 아기는 어떻게 헤엄을?…인간 수영본능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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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열 살 무렵이었다. 가족·친지들과 충북의 하천으로 여름 나들이를 갔다. 피서를 즐기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강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일행 없이 그 무리에 섞여 수영을 했다. 튜브나 구명조끼 등 안전장치는 없었다. 수위(水位)는 초등학생 가슴 높이였다. 물속에서 걷기도 하고 유영(游泳)을 하면서 점점 강의 중심부로 향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차와 사람이 겨우 지날만한 다리 아래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군데군데 소용돌이가 일어 몸이 휩쓸렸다. 주변에는 도와줄 이들이 없었으며 발을 뻗어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 머리까지 수면에 잠겼다가 다시 뜨기를 두세 차례 반복했다. '필름처럼 지난 일들이 스쳐지나간다'는 말을 그때 경험했다. 저 멀리 낚싯대와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였으나 손을 흔들고 구조를 요청해도 보거나 듣지 못할 거리였다.
본능적으로 헤엄을 친 건 그때부터다. '크롤영법'으로 불리는 자유형으로 사력을 다해 손과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다 지쳐 몸을 일으켰다. 천만다행으로 바닥에 발이 닿았다. 가까스로 물 밖에 나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공사에 쓰기 위해서 강바닥의 모래를 퍼 날랐다더라. 물살이 세고 군데군데 위험한 곳이 많다." 소용돌이가 왜 생겼으며 안전장치 없이 물에 뛰어들면 얼마나 위험한지는 나중에 알았다. 수영을 배운 건 그보다 1년 전이었다. 모 백화점에서 운영하던 수영장에서 또래들과 강습을 받았다. 자유형이나 평영, 배영 등의 기초동작을 익혔다. 운동을 좋아했으며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라 1년 가까이 수강했다. 그때 수영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

놀이로 시작한 수영은 생존 기술이 됐다. 여가나 생계, 건강유지 등 현대인이 수영을 배우고 즐기는 이유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쨌든 육지가 삶의 기반이며 장비 없이는 물속에서 1분도 살 수 없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물에 끌린다. 휴가철마다 수많은 인파가 바다와 강으로 향하고 상당수가 학교나 일터, 거주지 부근에서 수영을 즐긴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수영과 가까워졌을까. 영국의 수영 코치이자 작가인 에릭 샬린은 이런 본질적인 궁금증을 연구했다.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는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우리 몸의 70%가 수분이라는 점만으로도 물이 인간 생존에 필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저자는 나아가 놀이나 건강, 경쟁의 도구를 넘어 수렵, 농작, 노동, 상업, 전쟁, 종교, 과학, 예술 등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측면을 수영과 결부시킨다.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과 시대 상황에서 수영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순차적으로 풀어낸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신체구조와 행동방식을 형성한 기원도 물에서 비롯됐다는 '수생 유인원 가설'을 지지하는 것이 출발선이다. 가령 "인간의 배아는 직립 유인원보다 물고기나 양서류의 모양과 흡사하고, 태아의 목에 난 주름이 아가미의 흔적"이라는 주장이 그렇다. 그는 웨일스의 텔레비전 극본가 일레인 모건이 쓴 연구자료들을 토대로 이 가설을 부각시킨다.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 표지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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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은 "인류가 두 발로 서서 걷는 '이족보행'도 물에 적응하기 위한 동작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했다. 야생에서 네 발 대신 두 발로 서는 동작은 허리나 다리에 부담을 주고 배와 밀착된 장기(臟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불리하다. 그러나 얕은 물속에서 걷거나 이동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뒷발로 물과 바닥을 차냄과 동시에 앞다리를 펴 몸의 균형을 잡고, 물속에 있는 먹잇감을 집는 과정에서 손과 발의 역할이 구분됐다는 것이 모건의 주장이다. 유인원 몸에 수북했던 털이 사라진 이유도 수생 유인원 가설과 관련이 있다. 털은 포유류의 새끼들이 천적을 피할 때 어미에게 매달릴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하고 추위나 열기를 피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럼에도 체모가 사라진 건 물속에서 유영하기 쉽게 진화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모건은 "사람의 땀과 눈물에 포함된 염분도 과거 바다에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체내 균형 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진화한 인류 문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중국 등 강 유역에서 융성했다. 먹을 것을 구하고 안정된 환경으로 이동하기 위해 수영은 필수였으리라. 저자는 청동기시대를 거쳐 문명이 발달하고 지배계층이 생기면서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도 수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산호나 진주 등 수생물이 장신구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이를 채취하는 일꾼이 늘고, 무역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후 고대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등 도시국가가 형성되면서 수영은 해상 패권다툼을 위한 군사기술로 부상했다. 훈련 목적의 인공 수영장을 건설한 시점도 이때부터다.

중세는 수영의 암흑기였다. 기독교가 지배하면서 신체나 생활방식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영향을 줬다. 수영장이나 공중목욕탕이 성행했던 로마 시대와 달리 벌거벗은 채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행동은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말라리아 같은 수인성 질병, 산업폐기물로 인한 물의 오염도 수영의 성행을 막았다. 당시 발생한 질병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사탄이나 마녀 같은 초자연적 집단이 물을 혼탁하게 만든다는 해석도 퍼졌다. 이러한 인식은 의료와 체육교육, 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된 르네상스 시대에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인들이 탐험을 시작한 대항해 시대를 맞아 수영의 가치가 되살아났다. 18세기 산업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호기심은 수중 세계를 향했고, 이는 잠수 장비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수영은 경기 종목으로 또 한 번 진화한다. 취미 스포츠로서의 입지도 탄탄해졌다. 수영은 하계올림픽에서 육상 다음으로 많은 금메달이 걸린 기초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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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수영은 인류 역사의 동반자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인간의 미래도 물과 수영에 있다고 믿는다. 달과 우주를 탐험하고 연구하듯, 해저를 분석하고 거주지로 삼는 '수생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환경파괴로 인한 대홍수, 해일 등 자연재해의 위협에 직면했다. 해수면이 7600m나 상승해 지구를 삼킨다는 영화 '워터월드'의 상상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물은 두려움과 극복의 대상이 아닌 회귀해야 할 인간의 본능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끝까지 낙관적이다. 근거는 결국 역사에 있다. "우리가 다시 물에서 등을 돌리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왔고, 너무 많은 것을 배웠으며 너무 오랫동안 즐겼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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