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두 줄짜리 시 <섬>입니다. '가고 싶은 그 섬'은 휴가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유토피아일지도 모릅니다. 제게도 가고 싶은 섬이 꼭 하나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시원하고 선선한 곳. 우체부의 자전거 바큇살 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쏟아져 흐르는 곳.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의 외딴 섬으로 망명을 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옵니다. 시인이 머물고 있는 마을은 너무 작아서 우체부도 없습니다. 순박한 노총각이자 가난한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는 네루다의 전속 우체부가 되어 편지를 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배우게 됩니다. 그는 시를 통해 마을의 아름다운 처녀 베아트리체 루소의 마음을 얻게 되고 마침내 결혼도 합니다. 네루다는 박해가 풀리어 조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마리오는 군중대회에 나가 네루다에게 헌정하는 시를 발표하려다 현장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은 디테일의 힘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 서정적인 배경음악, 시에 대한 쉽고 진지한 설명…. 평소의 시 이해와 확연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죠. 시의 진정한 주인은 시인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대담한 발상 전환, 아름다움의 발견은 시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라는 깨우침이 몸 안에 녹아듭니다. 마리오에게 들려주는 네루다의 황홀한 해변 시낭송은 또 어떤가요. 시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노래라는 체험을 뼛속 깊이 하게 됩니다. 시가, 예술이, 금린어처럼 싱싱하게 밀려옵니다.
산언덕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마시모 트로이시 길입니다. 마시모 트로이시는 우체부 역할을 맡은 배우 이름입니다. 길 표지판 옆 폐허의 잡초밭 사이로 더듬어 올라가면 네루다 시인의 집이 있습니다. 울다 지친 매미껍질처럼 텅 빈 마당. 제 몸 걸어 잠근 문. 영화 촬영 현장임을 알리는 신문 기사와 사진이 잠긴 문에 쓸쓸하게 붙어 있습니다. 시인이 시를 쓰던 자리, 아내와 함께 춤추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던 시인의 뒷모습. 영화 속의 그 공간에 부겐베리야 붉은 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늘은 크고 바다는 시원합니다. 꽃나무 그늘에 산들바람 붑니다. 산들바람은 우체부입니다. 저는 문득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와 있음을 느낍니다. 사람만이 제일이 아닌 곳. 사람 중심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곳. 하늘과 바다가, 지나온 시간들과 지금 이 순간이 하나가 됩니다. 잠 못 드는 그대의 열대야 길 위에도 '사이'의 사랑과 평화와 아름다움이 쉬르릉 휘르릉 은빛 바큇살처럼 새로 흘러가기를 기원합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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