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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음악제 살린 파격, 손열음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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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예술감독과의 만남, 2018 평창 대관령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피아니스트 손열음(C)Taeuk Kang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피아니스트 손열음(C)Taeuk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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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국제 음악제(현 평창 대관령 음악제)는 강원도의 동계 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2004년 시작됐다. 강효 세종솔로이스츠 예술감독(2004~2010), 첼리스트 정명화ㆍ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공동감독(2011~2017)으로 각각 7년을 보내며 기반을 닦았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다음에는 행사의 존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엄존했다.

축제 운영의 재정비가 요구되는 시점에 1986년 원주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3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지난 2년의 부예술감독 기간에 넘치는 아이디어로 주위를 놀라게 했지만 국내 예술 지형에서 30대 예술감독은 실험과 다름없다. 손열음은 이제 자신의 연주력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의 창의성과 매끄러운 운영을 기준으로 공인의 가치를 평가 받을 것이다.
2018 평창 대관령 음악제(25일~8월5일)의 주제는 '멈추어, 묻다'로 모든 공연에 '그래야만 하는가(Muss se sein?)' 같은 소제목이 붙었다. 아티스트 섭외와 레퍼토리 구성, 세부 공연의 아이덴티티 공유까지 축제 구석구석에 손열음 색채가 뚜렷하다.

우선 참가 예술가의 연령이 훨씬 낮아졌다. 피아니스트 김선욱ㆍ박종해ㆍ이진상,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비올리스트 이한나, 노부스 쿼르텟은 손열음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이다. 연주 기량과 소통면에서 새 감독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뮤지션들이 전면에 섰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연습실에서 싸이월드용 셀피를 찍던 철부지들이 이제는 한국 클래식계의 질적 발전을 고민하고 책임의식을 공유하는 위치에 올랐다.

아울러 클래식의 본고장 독일에서 탁월한 기량으로 전문가들에게 주목받던 실력파 연주자들이 대거 축제에 합류했다. 하노버 음대 재학과 베를린 체류를 통해 오랫동안 손열음이 지켜봤던 인재들이 페스티벌에 첫선을 보인다. 첼리스트 율리안 슈테켈, 안드레이 이오니차, 레오나드 엘센브로이, 알렉산더 차우시안의 4인방은 그동안 상업성이 보장되지 않아 민간 기획사에선 내한 초청을 주저하던 음악가들이다. 20여년 전 한창 영재로 주목 받다가 오랫동안 국내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던 첼리스트 김두민의 완전히 새로운 모습도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클라라 주미 강 (C) Marco Borggreve

클라라 주미 강 (C) Marco Borggr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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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악 바탕의 여름 페스티벌은 바이올리니스트의 면면으로 대체적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서울시향 악장 출신의 스베틀린 루세프, 아시아 최고의 테크니션 닝 펑, 러시아식 기본기를 무장한 보리스 브로프친, 미모와 재능이 조화를 이룬 클라라 주미 강, 알레나 바에바는 일본의 신성 타츠키 나리타와 함께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퀄리티를 실질적으로 책임진다. 무엇보다 잘 들을 줄 알고, 솔리스트로 독창적인 사운드를 인정받은 현악 주자들이다.

주목할 공연은 오는 29일 열리는 소녀 피아니스트 임주희의 데뷔 무대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천거로 2012년 런던 심포니 내한공연에 깜짝 출연한 이래 정명훈과의 협업 말고는 사실상 은거했던 임주희(2000년)의 국내 첫 독주회다. 바흐의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를 시작으로 차이콥스키, 쇼팽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들이 10대 시절의 손열음을 연상시킨다.

2018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장기인 즉흥 연주를 맛볼 28일 '네 멋대로 해라' 공연도 흥미롭다. 여류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처럼 박종해는 몇 개의 코드음이 주어지면 당일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세트 리스트를 공동 제작하는 수준에 올랐다. 고전-낭만-국민주의처럼 언뜻 기계적으로 음악 사조를 외웠던 청중들도 박종해의 재해석을 통해 시대별 구분을 명확히 할 기회다.

28일에는 손열음을 가장 아끼는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 전 모스크바 필하모닉 음악감독의 지휘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손열음)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도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즐길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에 모스크바 필하모닉을 데려온 키타옌코는 2000년을 전후해 KBS 교향악단 음악감독을 지내며 한국팬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 성악곡과 관현악곡 가리지 않고 정중한 스타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휘자다.

손열음의 평창 대관령 음악제는 단기적으로 게르기예프가 주도하는 블라디보스토크 연해주 페스티벌과 협업을 모색하면서 대외 인지도를 제고할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1990년 시작된 아시아 최고의 여름 클래식 축제,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에 도전하면서 재정 규모를 확대하고 아카데미의 내실화를 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행사 개최 10년이 넘도록 축제가 발굴한 영스타가 뚜렷하지 않은 점은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한계다. 또한 손열음은 행정일을 보면서 예술 행로가 관료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수많은 음악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감독 활동 이외에 예술가로서 절대 연습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필수다. 

한정호 객원기자

한정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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