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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낙하산 인사, 이왕이면 더욱 정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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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몫(lion's share)'이란 말이 있다. 이솝 우화에 나온다. 사자와 야생 당나귀가 함께 사냥을 나갔다. 사냥이 끝난 후 포획물을 삼등분한 후 사자가 "나는 맹수의 왕이니까" "내가 너를 도와줬으니까" "네가 탐내면 큰 피해를 줄 테니까"란 세 가지 이유를 대며 혼자서만 차례로 고깃덩이를 챙겼다. 강자(强者)독식이다.

이게 현대에 와서 변형된 것이 승자독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역대 정권이 거르지 않고 보여온 '낙하산 인사'가 그 전형적 행태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코드인사니 뭐니 해서 말이 많았는데 당분간 확산될 전망이다. 그간 미뤄왔던 공공기관장 인선도 적지 않고 6ㆍ13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별로 논공행상이 이뤄지는 건 필연이기 때문이다.
한데 낙하산 인사에 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언론은 흔히 비아냥조로 이야기하는 낙하산 인사는 스포일 시스템(spoils system)이라는 엽관제(獵官制)의 산물이다. 능력이나 실적보다 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에 따라 공직자를 임명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엽관제는 우리나라 정치판만의 문제적 현상이 아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엔 '조지아 마피아' '캘리포니아 마피아'란 말이 워싱턴 정가에 떠돌았다. 주지사 시절의 측근들을 대거 중용한 것을 꼬집는 말이었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할 미국에서도 그랬다.

엽관제의 등장 역시 나름 명분이 있었다. 민주 정치에서 엽관제를 본격 도입한 이는 1829년 취임한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란 것이 정설이다. 당시 미국의 관직은 동부의 상류층이 독점하는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였다. 서부 출신의 잭슨 대통령의 공직 물갈이는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선거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만큼 국정을 담당한 이들도 정파에 따라 임면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맞는다는 논리가 먹혀들었기 때문이었다. 엽관제가 달리 교체임용주의(doctrine of rotation)라 불리는 이유다.
결정적으로 엽관제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니 뭐니 해도 '낙하산들' 덕분에 관료사회의 경직성과 특권화가 약화되고, 충성심과 일체감을 바탕으로 국정 추진력이 강화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게다가 치열한 선거전을 함께 이겨낸 '전우'들 중 챙겨줘야 할 이가 한둘이겠는가. 그러니 인정해주자. 이른바 대권을 쥐면 전략이든 인정이든 낙하산 인사의 유혹을 떨치기는 어려울 거란 사실을.

하지만 이것은 낙하산이 적재적소에 떨어질 때고, 정도의 문제다. 행정은 갈수록 전문성을 요한다. 추진력뿐 아니라 안정성, 효율성도 중시해야 한다. 경호 업무 출신이 은행 감사를 맡거나 단지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전혀 무관한 공기업 사장을 맡는 식이라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왕 할 거면 부디 낙하산을 정교하게 떨어뜨려 줬으면 한다. 마치 작은 원 안으로 낙하하는 공수부대원처럼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갖춘 인물을 '투하'해주었으면 한다.

다른 하나는 부디 '적폐 청산' 운운하지 말았으면 한다. '신동아'의 7월호 기획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 기관장 156명 중 77명이 낙하산 인사로 의심된다고 한다. 비율로 치면 각각 49%, 74%에 달하니 두 명에 한 명꼴이 넘는다. 그런데도 보수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비난한다면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는 격 아닌가.

그러니 이솝 우화의 사자처럼 궁색한 논리를 대지 말고 전리품을 그냥 덥석 물라. 그 편이 차라리 강자(强者)답고 승자에 어울린다. 부적격 낙하산의 저지레를 수습하느라 품과 비용을 들이는 건 나중 일이니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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