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불찰입니다
종이 상자를 뜯어 엉덩이 밑에 깔고
신문지 쪼가리로 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었고
수은등이 창백하다 못해 파리한 탓도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 속의 전부를 노파의 손에
쥐어 준 것은 더 큰 불찰이었습니다
어디 사면의 방에라도 가서 쉬시라고 했습니다
어느 찜질방이라도 가서 몸을 뉘이시라고 했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더 늦은 밤이었고 행인도 끊겼지만
여전히 그 노파는
얼마 전의 행색과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대책 없이 살고 있는 매일의 내가,
남의 관심을 구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주머니 속의 전부를 내주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내게 모든 것을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파의 눈과 마주쳤을 때,
싸늘한 한기가 나를 밀어냈습니다
밤늦은 귀가는 이제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다 읽고 나면 뭔가 좀 불편하다. 마지막 연 때문이다. 유난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밤늦은 귀가"를 "이제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시인을 향해 그러하기에 더욱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변하였을 것이고, 극히 현실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저 "싸늘한 한기"를 들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었을 것이다. 이 둘은 극과 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노파"를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희한하게도 통한다. 어쨌든 그들에게 "노파"는 연민 혹은 냉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들이 한 일이라곤 기껏해야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린 것이 전부였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노파"를 "싸늘한 한기" 속에 버려 둔 채 득의만만하게 따뜻한 집으로 돌아간 것은 실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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