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축구경기에서 라커룸은 때로 기적을 만드는 공간이 된다. 우리가 모두 인정하는 명장들은 라커룸에서 승부를 바꿨다.
거스 히딩크 감독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와 일해본 사람들은 "히딩크도 라커룸에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는 팀이 지고 있거나 간판 선수가 부진할 때 선수들의 자존심을 긁는다. 필요하면 욕도 던진다. 오기를 발동시키는 것이다.
멕시코와 벼랑끝 승부를 하는 우리 축구대표팀도 '라커룸의 기적'이 필요하다. 멕시코와의 경기는 양상을 가늠하기 어려워 더욱 그렇다. 멕시코는 최소 10가지 전술을 모두 쓸 수 있는 팔색조팀이다.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멕시코 감독은 상대의 약점을 잘 간파하는 지도자다. 우리가 멕시코를 100% 알고 대응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된다. 그러면 경기 중에 변수가 나올텐데 이에 잘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반전을 통해 멕시코의 작전을 확인하고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대응책을 잘 세워 후반전에 승부를 걸면 우리에게도 승리의 기회가 올 것이다.
다만 우리 대표팀이 그동안 라커룸을 들어갔다가 나와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하다. 최근 경기내용을 보면 전반 초반 15분은 우리 대표팀이 경기를 주도하지만 이후부터는 상대팀에 주도권을 내주고 라커룸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에는 다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지만 후반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해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은 프로축구 성남 일화(현 성남FC) 사령탑 시절 경기가 잘 안 풀린 날 라커룸에 있는 쓰레기통을 집어 던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때의 장악력이 절체절명의 멕시코전에서도 필요하다. 선수들끼리도 다 같이 모여 대화해야 한다. 2~3명씩 삼삼오오 모여 라커룸에서 경기내용을 분석하고 있으면 소용 없다. 23인이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고 후반전을 준비해야 한다. 필요하면 선수들끼리 싸워도 괜찮다. 유럽 유명 클럽에서는 팀의 간판 선수 2명이 라커룸에 들어와서 서로 고성을 오가면서 한바탕 싸우고 후반전에 임하는 일이 흔하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서로의 어깨를 감싸고 격려하는 게 또 축구의 묘미다.
멕시코전에서 신태용호의 라커룸은 이렇듯 치열했으면 좋겠다. 경기마다 후반전에 체력이 떨어져 다리에 힘이 풀렸던 대표팀이 확실하게 정신무장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라커룸에만 있다. 라커룸에서의 대화는 후반전에 우리 대표팀의 교체카드 활용 방안 등에 대해서도 좋은 수를 찾을 수 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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