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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역과 기술의 냉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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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류 관세 부과에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 즉 G2 간의 무역 분쟁이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통상법 301조에 의거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따른 대응으로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도 동일 규모의 맞대응에 나섰고, 이어 도널드 트럼프가 추가적으로 최대 400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대중 수입액(재화 기준)이 지난해 5055억달러인데 관세부과 대상 4500억달러면 그중 90%에 이른다. 반면 미국의 대중 수출액은 1299억달러에 불과해 중국이 맞불을 놓을 여지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자국 소재 미국 기업의 영업을 제한하거나 공급망을 교란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미국도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미국 진출 시도를 좌절시키는 한편, 같은 통신장비업체로 그나마 미국에서 선전하던 ZTE를 제재하는 등 중국 기업의 진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처럼 미ㆍ중 갈등은 단순히 직접적인 무역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본래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축소와 제조업 및 일자리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최근에는 더욱 중장기적 차원에서 미국의 경제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지식재산권이나 첨단기술 산업의 보호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제조 2025'를 앞세워 첨단산업 육성과 기술 경쟁력 제고에 열중하고 있는 중국이 주요 타깃이다. 글로벌 경제환경의 판도를 뒤바꿀 4차 산업혁명의 패권을 둘러싸고 각축전이 본격화된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의 경험을 보면 세계 경제열강 간의 관세전쟁은 승자 없이 모두에게 파괴적 결과를 초래한다. 한편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의 행태나 중국 측의 신중한 반응을 감안할 때 타협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무력화에서 보듯이 지금은 이러한 협상을 관장할 글로벌 거버넌스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전면 충돌은 모면하더라도 상호 갈등이나 분쟁은 지속될 소지가 크다. 무역 '열전(hot war)'은 아니더라도 무역 '냉전(cold war)'이 이른바 뉴노멀 시대의 상수로 자리 잡을 것이다.

무역 냉전에는 기술 혁신과 표준을 둘러싼 경쟁, 즉 일종의 '기술 냉전(tech cold war)'도 가세한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500억달러 규모의 관세 대상 품목들은 대부분 중국 '제조 2025'와 연관된 것으로서 항공우주, 정보통신, 로봇공학, 전기 자동차 등이 주종이다. 미국이 우위를 누리는 첨단기술산업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나 추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이미 미국은 10대 첨단기술제품 분야에서 지난해 중국에 1354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첨단기술제품의 전체 무역적자 1109억달러를 20%나 초과한다.
물론 이러한 적자는 중국의 기술 혁신을 반영하기보다는 미국과 국제 공급망으로 엮인 것이 상당수다.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미국에 아이폰을 700억달러나 수출하지만 대부분은 애플의 순익이나 한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생산된 부품원가로 귀속되고 주로 조립공정에 치중한 중국에 남는 것은 10억달러(1.4%)에 그친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통해 획득된 노하우나 기술을 샤오미, 화웨이, 오포&비보 등 세계 3~5위의 매출 실적을 자랑하는 '토종'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사실 세계 특허출원 1~2위 기업도 화웨이와 ZTE다.

양국과 경제적, 기술적 연계성이 큰 우리 경제도 자칫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결과를 빚지는 않을까. 소득주도 성장의 실험 속에 혁신 성장을 추구하고 있지만 무역과 기술을 둘러싼 신냉전 시대의 도래에 우리가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배현기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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