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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정래, "자유왕래·남북결혼시대 오면 통일은 시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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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재벌·언론 이야기… 권력의 민낯, 기자의 소명 신랄하게 쓰겠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선생이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aymsdream@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선생이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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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75)의 '태백산맥'은 우리 분단 문학의 거대한 성과로서 20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두 줄기 시간의 터널을 관통하면서, 우리 분단의식과 역사인식에 근본적인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첫 줄기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으로서 한반도가 광복과 분단을 동시에 맞아 남한 정부가 수립되고, 4ㆍ3항쟁과 여순사건이 일어난 1948년 10월부터 한국전쟁이 끝나 휴전협정이 조인되는 1953년 10월까지다. 또한 조정래가 이 작품을 쓰고 출간한 1980년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군사정권의 철권이 격돌하는 시대였다. 조정래는 1983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해 1986년 제1부를 출간했다. 제 10부를 내놓아 완간한 해는 1989년이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 태백산맥의 숨결은 선명하며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또한 작가 조정래는 원고지의 행간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교사로서 예언자적 사명에 충실해왔다. 그의 사자후는 매서운 채찍으로, 따뜻한 격려로 우리 사회에 영감을 주었다. 아시아경제는 창간 30돌을 맞아 조정래를 인터뷰하였다. 그의 뜨거운 언어를 통하여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우리의 현재를 냉철히 점검하고 통일 한국의 벅찬 미래를 축복하고자 하였다. [대담=허진석 부국장]
-태백산맥은 올해로 완간 30년째를 맞았습니다.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문단과 독자를 사로잡기 시작해서 여전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작품이죠. 이 작품이 한 세대를 지나도록 변함없이 읽히고 의미로 남는 힘은 어디에 있나요.
▲두 가지겠죠. 첫째 우리 민족의 분단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것, 두 번째는 소설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실. 진실이라고 하는 건 변하지 않는 거고 진실은 곧 진리로 가는 길이잖아요. 진리의 불변의 가치와 남북 분단이 계속되고 있는, 두 가지가 합해져서 독자들에게 읽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태백산맥의 현재적 가치가 진실의 측면에 있다면, 바꾸어 말해 태백산맥을 통해서 규명하고 밝히고자 했던 진실에 대한 작가의 목표와 욕구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봐도 옳은가요.
▲태백산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단 극복을 한 다음 단계로 남북통일을 지향하자는 것이에요. 좌익, 우익, 남북한 다 편들지 않고 중립지대에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 분단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73년째잖아요. 해방과 함께 와 버린 게 분단이니까. 그리고 6ㆍ25 전쟁 이후에 65년. 저 앞의 목표는 통일인데 언제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때까지 태백산맥은 살아있을 거예요.

-통일이 되면요.
▲분단된 세월에 대한 비판적 역사가 시작될 거예요. 우리가 분단된 세월은 73년이니 일제강점기의 딱 두 배예요.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은 나라를 되찾는 염원 하나였는데 후대들이 잘못해서 분단이 됐잖아요. 여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묻는 작업이 시작될 겁니다. 그때까지도 내 소설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근본적인 문제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작가로서.
'태박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그랜더앰배서더서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태박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그랜더앰배서더서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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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한 지도자가 만나고 당장 내일이라도 왕래가 가능하고 비무장지대가 해체될 것 같은 기대들을 합니다만 선생님 말씀을 듣다 얼핏 지금 동작동 현충원에 있는 분들과 평양 혁명열사릉에 계신 분들은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되나 하는 막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막할 것 없어요.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죽은 사람이 대략 300만명. 독립을 염원하며 300만명이 죽어갔는데 분단을 막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있잖아요. 그것을 부인하면 정말 악질이거나 역사에 대한 무책임이거나 무의식일 거예요. 역사와 민족에 대한 무책임 때문에 일어난 일이 6ㆍ25예요. 남쪽에서 죽은 만큼 북쪽에서도 죽었어요. 민족 전체가 그 죽음에 대해 참회하고 사죄하는 제사를 지내야 해결할 수 있어요. 그게 통일이에요.

-태백산맥 집필을 1983년에 시작하셨죠. 광주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작가에게는 선도자, 예언자인 부분이 있어요. 현실의 모순과 제약에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사회적 임무가 주어진 거죠. 광주, 그때는 '사태', 즉 민주화 투쟁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적을 무찌르라고 국민의 세금을 들인 군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는가' 이해하기 어려웠죠. 거기에 미국의 묵인이 있었고, 그 묵인 속에 분단을 핑계 삼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전두환 정권이 탄생한 겁니다. 이러한 모순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아니다, 이제 제대로 써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정치적 압력이 오리라고 각오했죠. 그걸(태백산맥) 쓰면서 위궤양에 걸려 위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소당해 11년 동안 조사를 받았고. 유서를 두 번이나 썼습니다. '내가 갑자기 교통사고나 어떤 이유로 죽으면 나를 고발한 여덟 개 단체가 죽인 것이다'라는…. 이런 각오를 하지 않고는 상황을 돌파할 수 없었고 그걸 각오했기 때문에 태백산맥이 30년이 되도록 독자들에게 읽히는 힘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태백산맥에 등장인물이 300명 이상 나옵니다. 어떻게 이 많은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었을까요.
▲소설은 언어(문자)와의 싸움이면서 인물과의 싸움이죠. 인물을 얼마만큼 개성적이고 능동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내느냐에 따라서 소설의 승패가 좌우돼요. 70억 인구가 생김새만 비슷할 뿐 다 다르죠. 그 다름을 파악해내는 것은 작가의 투시력과 관찰력, 그리고 감각이에요. 그것은 말로 되지 않습니다. 끝없는 노력, 재능 더하기 노력.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인물은.
▲남자로서는 하대치, 여자로서는 외서댁. 그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잖아요.

-살아남는 걸 가장 가치 있게 보시나요.
▲수많은 태백산맥 연구자들마저도 제게 묻곤 합니다. 주인공이 누구냐고. 힌트를 주자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엔 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일을 겪고 살아남지 않는가, 마지막에 여섯 명 중에 두 명의 이름이 밝혀지는데 네 명은 그림자처럼 취급해버리고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역사는 남녀가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실패한 민중을 위한 혁명은 끝없이 되풀이해 다가옵니다. 오늘날의 민주화 투쟁도 결국은 하대치나 외서댁이 추구했던 세계잖아요.

-연구자들은 태백산맥이 여순사건이나 토지개혁의 실상 같은 것을 처음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다뤘음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취재하고 작품화하는 과정이 어떻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능했을까요.
▲두 가지예요. 첫째 해방공간.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은 역사에서 지워지고 없어요. 그걸 연구하면 나처럼 고발당하거나 감옥에 갈 테니까, 모든 연구자들이 기피해요. 그런데 그 8년의 모순을 드러내지 않고는 다음 역사가 이어지지 않아요. 나는 여순사건을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었어요. (소설에 나오는) 법일 스님은 내 아버지야. (작품 속에) 생김새도 아버지와 똑같이 그려 넣었죠. 역사의 파란을 보통 내 나이 사람들보다 열 배는 심하게 겪었기에 그 이야기가 내 문학의 원형질이 됐죠. 또한 이 인식이 민족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의 문제로 연결됐습니다.

-태백산맥이 묘사한 이념의 불일치, 분단은 엄연히 현실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분단의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합니까.
▲분단은 결코 안 된다고 한 사람이 둘 있어요. 몽양 여운형과 백범 김구 선생. 두 분 다 어떻게 됐어요. 암살당했잖아요. 북쪽에서도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은 죽는 거예요.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불의가 지배해온 게 우리 분단의 역사잖아요. 이런 비극을 계속해온 우리가 스스로 사함을 받기 위해서라도 역사는 제대로 책임 있게 봐야 합니다. 남북 정상회담도 모두 마음을 모아 해야죠. 그것이 역사가 현시점에서 요구하는 우리 책무가 아닌가….

-언젠가 TV에 출연해서 우리나라의 이념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고 가족주의다. 통일도 이산가족의 하나됨도 필연이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는데요.
▲6ㆍ25의 수많은 문제점과 피해 중의 하나가 이산가족입니다. 이산가족 1000만명 중에 90%가 세상을 떠났어요. 남북 회담이 잘 되면 제일 먼저 이산가족부터 자유 왕래시켜야 해요. 그들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족이 확대된 공동체가 민족이잖아요.

-지금 (남북관계)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잘된다고 생각합시다. 그러면 평화선언을 하지요. 불가침조약하지요. 군축하지요. 자유왕래하지요. 남녀가 결혼하지요. 거기까지.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와르르 통일이 되는 겁니다. 그 세월이 20년이냐 30년이냐 40년이냐 차이만 있을 뿐이에요. 그저께 일(북한이 고위급 회담 연기를 선언한 시점)은 예견된 거예요. '기 싸움'하는 거지요. 잘될 거예요. (우리나라) 매스 미디어가 너무 방정맞아. 무슨 일만 있으면 큰일 난 것처럼 난리를 치는데 이건 아니에요. 잘되길 우리가 바라고, 미국과 북한에 압력을 가해 우리 민족 전체가 원하는 것임을 거듭 환기해야 합니다.

'태박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그랜더앰배서더서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태박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그랜더앰배서더서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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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말한 운전자론, 우리가 계속 핸들을 잡고 갈 수 있을까요.
▲있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문 대통령은 우리 동포, 같은 민족이란 말이예요. 도보다리에서 그런 밀담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말이 통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처음에 나는 (문 대통령은) 언제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건가 했는데 '지금 넘어가보시죠'라며 손잡고 하는 것은 민족 동질성이 바로 확인이 되는 거예요. 다른 나라 사람이면 절대 그렇게 안 돼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손을 잡으면서 이끌림, 그게 피의 끌림이라는 거예요. 이론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저절로 되는. 앞으로 문 대통령 사명이 커요. 양쪽으로 서로 믿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징검다리 역할을 잘 해야돼요.

-모래시계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 보세요. 평창동계올림픽 전에 난리났었잖아요. 곧 전쟁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리고 겨우 평창올림픽 마치고 나면 전쟁 터진다고 난리났었잖아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잖아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진정성, 진실을 가지면 아무리 큰 일도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어요. 자꾸 시비 붙고 속이려고 하기 때문에 오래 끄는 것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김 위원장도 진실성 있게 마주 앉으면 다 해결돼요. 그걸 믿어야되는 거지.

-요즘도 원고를 손으로 쓰시고 컴퓨터는 켜고 끄는 것조차 모르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는 따로 챙겨서 보십니까.
▲그럼요. 신문은 매일 보고 필요한 것들은 언제 필요할지 모르지만 전부 스크랩하죠. 내가 보는 신문은 전부 걸레가 돼 버려요. 중요한 걸 다 스크랩해서 날짜 표시하고 하기 때문에. 열심히 보죠.

-선생님의 작품에는 꼭 기자가 나옵니다. 기자 캐릭터를 꼭 작품에 넣는 이유는.
▲(웃으며) 사실과 진실을 운반하는 매개자로서 가장 합리적이잖아요. 설득력 있고.

-너무 기자를 좋게 보시는 거 아닌가요.
▲(정색하며) 열 명이나 스무 명 중에 쓸 만한 기자는 한두 명뿐이에요. 자본에 물들어 재벌과 정부 편만 들고. 내가 쓰는 다음 작품은 주제가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인데 거기 기자의 역할이 굉장히 크게 나와요. 그런데 열 명 중에 한 명이거나 스무 명 중에 한 명쯤이 괜찮고 나머지는 다 개×끼들이에요. 소설에서 기자 30명, 40명이 하나의 사안을 공동으로 취재합니다. 중요한 사회적 문제죠. 그런데 한 명, 두 명 떨어져 나가고 1년이 지나니 한 명만 남아요. 그 고독한 기자의 모습으로 조명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신랄하게 쓸 거예요. 언론의 적폐에 대해. 입법, 사법, 행정, 재벌, 언론 등 다섯 정치권력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유린하고 억압하는가를. 우리는 천 년 동안 물어왔습니다.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과연 필요한가. 지식인들이, 철학자들이, 사회학자들이 해왔어요. 인생은 무엇인가란 답이 없는 질문처럼. 그 응답을 조정래가 해보겠다는 겁니다.

-작품을 쓸 때 취재를 기자 이상으로 하십니다. 작가와 기자의 취재는 어떻게 다를까요.
▲기자는 5W1H(육하원칙)에 따라 사실만을 전달하죠. 한 줄도 작문이 아니잖아요. 작가는 그게 아닙니다. 취재를 충분히 하되 주인공들을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소화시킴으로써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문학적 거짓말'을 아주 잘 꾸며내야 하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저널리즘이 할 수 없는 걸 문학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훨씬 더 크게 할 수 있죠. 내가 태백산맥에서 한 이야기를 기자들이 한 번이라도 했습니까.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고발당했을 때 모든 신문이 문제 있는 작품이라고 썼어요. 한 곳만 빼고. 태백산맥 문학관에 다 전시돼있어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언론이 하지 못한 것을 소설이 하잖아요. 마르케스가 얘기했어요. 진실을 말하고 정의에 편에 설 용기가 없으면 소설가가 되지 말라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글 감옥'을 지었군요. 왜 만들고 왜 들어갔습니까.
▲소설에 내 살아있는 생각을 바친다는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게 첫 번째 이유죠. 두 번째는 소설의 진실은 역사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글 감옥에 안 가시고 사업을 하셨으면 큰 돈을 버셨을 거라는 지인들이 계신데요.
▲(으하하하 웃음)나는 사업을 했으면 진짜 돈을 많이 벌었을 겁니다. 가령 외국에 나가 취재할 때 '저거 하면 되겠다'는 게 눈에 보여. 미국에 갔을 때 식당에 갔는데 탁 눌러서 불을 붙이는 긴 가스 라이터가 있더라고. '아 저거 되겠네' 싶었죠. 그때가 1996년, 1997년…. 그런데 그게 20년, 30년 뒤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반화되더라고. 베트남 하노이에 취재 때문에 갔는데 길거리 식당에 허름한 의자 놓고 먹는 쌀국수가 맛있어요. 가이드가 말하기를 300가지 쌀로 국수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게 다 맛이 다르다는 거예요. '아, 이거 되겠다'. 한국 사람들은 DNA가 쌀이잖아요. 밀가루가 아니고 쌀이잖아요. 이후에 한국에서 베트남 쌀국수 인기가 폭발했잖아요. 집사람(시인 김초혜씨)이 그래요.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야(웃음). 사업 했으면 잘했을거야'라고.

-문학 외적으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나요.
▲없어요. 우리는 모두 한 번밖에 못 살잖아요. 그리고 한 가지 일밖에 못 해요. 그 한 가지 일로 세상이 알아줄 만큼, 인정할 만큼 열매를 맺으려면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돼요.

'태박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그랜더앰배서더서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태박산맥'의 저자 조정래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그랜더앰배서더서울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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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무 가혹한 표본 아닌가요.
▲인생이란 스스로를 말(馬)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하며 달려나가는 노정입니다. 두 개의 돌덩이를 바꾸어 놓아가면서 건너는 징검다리이기도 하죠. 누가 놓아둔 징검다리가 아닙니다. 거센 물줄기 앞에서 돌 두 개를 바꿔 놓아가는, 얼마나 처절하고 절박한 인생입니까. 수십 번 죽음과 맞닥뜨리지 않고는 노력했다고 말하지 말라-그러한 정신으로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 나이 마흔이었습니다. '아리랑'과 '한강'을 쓰고 나니 육십이 됐어요. 그동안 술 한 잔 안 마셨어요. 왜. 술 마시는 시간이 아까워서. 내가 조계사에 가서 스님들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어요. '스님들 내 앞에서 면벽참선 3년, 10년 했다고 자랑하지 마시라. 이 속인은 면벽참선 20년을 해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썼다'고. 스님들이 막 박수를 치십디다. 예술의 길이란 게 그런 거요. 예술의 길만 그러하겠는가, 아니죠. 힘이 세다고 하는 표범, 사자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잖아요. 하물며 인간이….

-다른 말씀을 좀 듣죠. 최근 문화계의 미투 운동, 어떻게 보시나요.
▲(큰 한숨)남존여비, 남자중심사회. 이것이 대한민국에 상존해왔어요. 말로만 민주주의고 뒤로는 남자우월. 아니,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 세계가 똑같아요. 누적돼온 병폐의 문화가 미투로 터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행위를 잘못한 자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됩니다. 법적, 도덕적, 양심적 처벌을 받아야 해요. 말이 안 돼. 문학, 예술을 빙자해 그따위 짓을 하고 합리화하려 들고.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여성이 그러더군요. '지금 발 벗고 자는 남자는 조정래 딱 한 사람 있다'고요.

-노벨상 거론되는 어른도 한 방에 그렇게.
▲우리 사회의 힘이죠. 우리 사회가 그 정도로 발전한 거예요. 인권의식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거.

-그 분을 입에 담기도 싫으신 건가요.
▲그럼요.

-부인과는 캠퍼스 커플로 유명하시죠.
▲캠퍼스 커플 원조가 우립니다. 그 전에는 그런 이름도 없었어요. 한 20년 전에 만들어진 말이잖아요. 나는 김초혜 선생에게 결혼하자고 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문학하는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다'고. 시와 소설이니까요. 만약에 함께 시를 썼거나 소설을 썼으면 서로 비교하게 되니까 누구만 못해 누구만 못해 이렇게 되죠. 다행히 장르가 다르니까 결혼을 했지요. "그러므로 우린 앞으로 평생 죽을 때까지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되 간섭하지 말자"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켜왔어요. 서로의 문학을 철저히 옹호해주고 받들어주면서 상대방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지적해요. 그리고 그 이상은 절대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초혜는 '사랑굿'을 쓸 수 있었고 조정래는 같은 시기에 '태백산맥'을 썼지요. 내가 '아리랑'을 쓸 때 김초혜는 '어머니' 연작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생을 함께 살아오다 보니까 지금 52년, 52주년이 됐네요. [정리=노태영 기자]

조정래 선생의 창간 축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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