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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은 무엇을 보았을까(종합)

최종수정 2018.06.14 20:49 기사입력 2018.06.1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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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아시아경제 나주석·이설 기자] 북미정상회담 다음날인 13일. 아래에서 본 57층 높이의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최상층의 공중 정원 스카이파크는 한 척의 배 같았다. 3개의 건물이 340m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스카이파크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였다. 비핵화와 체제교환을 맞교환하는 담판을 앞둔 11일 밤 야행을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들렸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날 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은 무엇을 보았을까(종합)

사실 김 위원장이 머물렀던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은 싱가포르 최대 규모 규모의 식물원인 싱가포르 보태닉 가든이 불과 몇백m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그가 가까운 곳을 두고 군사작전에 가깝게 대규모 차량 행렬을 이끌고 싱가포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야행을 떠났던 것은 싱가포르 시내와 싱가포르항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은 그의 야행을 관광(tour)으로 표현했다. 반면 북한 언론은 반대로 싱가포르의 '사회·경제 발전 실태를 돌아본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야경에서 무엇을 봤을까.
싱가포르항을 오가는 각국의 선박들

싱가포르항을 오가는 각국의 선박들


갑작스런 열대성 소나기 스콜이 찾아와 비가 내리더니 천둥소리가 들렸다. 올라가 바라본 스카이파크의 풍경은 세계로 향하는 도시국가의 진취적인 모습이었다. 배 모양의 스카이파크 뒤편에는 엄청난 물량의 컨테이너의 풍경이, 앞면에는 싱가포르를 찾는 수백여 척의 화물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 오른쪽에는 최신 식물원, 왼쪽에는 마천루의 풍경이 펼쳐졌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부유한 나라의 모습이었다.
싱가포르항

싱가포르항



싱가포르 주요 도심

싱가포르 주요 도심


각국의 언론들은 좀처럼 전례를 찾기 힘든 정상회담을 앞두고 낙관과 비관의 전망을 내놨다. 낙관을 이야기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국가간 정상회담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특수한 변수를 이야기했다. 김 위원장이 바로 35세의 젊은 독재자라는 점이다. 82년을 산 할아버지와 69년을 산 아버지를 생각할 때, 김 위원장 스스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체제를 근근이 유지하는 방식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체제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지, 수령론에 따른 정치철학인지 유달리 주민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다. 오죽하면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주민들을 사랑한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이 외에도 당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자료에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노출하는 것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북한 내에서 한 공식 일정이 평양에 새로 만든 수산물 시장을 찾는 것이라는 점도 민생을 강조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측 선수단 파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당시에도 그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마식령 스키장이나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홍보로 돌리려 애썼다.

현재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밀무역을 통해 유지되는 나라였다. 경제 성장 방안을 찾았던 그로서는 국제 사회의 제재 속에서 봉쇄된 나라에 대해 그는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답답했을 것이다. 짧지 않은 싱가포르 체류 기간 그는 경호상의 이유로 주로 호텔에 머물렀다. 가까이에는 북한 최정예 경호원들과 간부들이, 그 너머에는 각국의 정보요원과 싱가포르 군경이 둘러쌌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전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이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나라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답답함을 느꼈을 그는 하늘 위에 올라선 뒤에야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그날 밤 김 위원장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근처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내 '플라워 돔', '에스플러네이드'(Esplanade)과 멀라이언 파크(Merlion Park)의 연결지점도 잠시 들렀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식물원, 에스플러네이드는 싱가포르의 오페라하우스라고도 불리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외국의 관광객과 내부의 구성원들이 각각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는 어쩌면 싱가포르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찾으려 했을지 모른다. 중국이나 베트남은 일당독재라는 정치적 통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경제적 성장을 일궈냈다. 경제적 성장이 정치적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 모델이 어느 정도 확인됐다.

하지만 중국, 베트남조차도 대를 이은 권력의 상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주의를 표방한 싱가포르는 리콴유(李光耀)에 이어 리셴룽(李顯龍)이 총리를 맡아가며 권력을 유지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 성장과 정치적 독재, 권력의 상속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모델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그는 선군정치를 표방하며 군을 강조한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과 달리 당을 권력의 중심으로 세웠다. 이 때문에 중국식 성장모델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은 한층 높아진 상태다. 이런 준비를 해왔던 그로서는 싱가포르의 부유한 모습을 보며 개혁과 개방에 대한 꿈을 꾸게 됐을지 모른다.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의 야경을 본 뒤 "앞으로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셀카를 찍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내 '플라워 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셀카를 찍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내 '플라워 돔'


달라진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이 중국 측에서 제공한 항공기를 사용했고,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감추지 않았다. 실용적 이유라면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럽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됐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이유로 수령지도체제를 수립했던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북미 관계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될 것으로 봤다.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미움으로 유지됐던 체제는 이제 새로운 무엇인가를 추진하기 위해 변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무기 대신 마천루와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제시하는 김 위원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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