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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합리적 통제 없는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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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감독이 알고 있던 조각들을 저도 다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맞춰질 줄 몰랐어요. 누가 도와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 '그날, 바다'에서 제작자 김어준은 세월호 침몰의 실마리를 찾았다며 감격한다. 김지영 감독과 흥손치기를 한다. 그는 왼쪽 앵커(닻)를 가리킨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해저 면에 걸려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혔다고 주장한다. 주된 근거로 해저 등심선과 세월호의 항적도를 제시한다. 지그재그로 이동할 때 항적이 등심선의 깊이와 일치한다고 설명한다. 반론의 여지가 많지만 검증하는 과정은 생략한다. 대신 장엄한 클래식 연주와 함께 배우 정우성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런 현상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침몰 원인, 왼쪽 앵커. 다큐멘터리 팀의 결론이다."
이들의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지난 24일 공개된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닻 내림 장치(투묘)에 밧줄과 쇠줄이 모두 감겨 있었다. 닻의 쇠줄이 감긴 상태에서 배가 침몰한 것. 선수 좌현 닻 출입구에서 찌그러진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닻이 내려져 배를 끌었다면 닻 쇠줄이 드나드는 출입 구멍에는 흔적이 남아야 한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왼쪽 닻은 통상적인 고정 과정을 거쳐 정상적인 상태로 있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객관적 기록이지만, 절대적인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현실은 주관적으로 바뀌고, 프레임은 해석된 현실로 나타난다. 언제든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정 이념에 치우쳐 변질될 우려도 있다. 그날, 바다는 이를 간과한 듯하다.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사실만 전문가에게 제시해 적절한 답을 구하고, 애초 세운 전제에 유리한 정황들만 수집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도출한 결론을 힘주어 말하면서도 '가설'이라고 언급해 추후 비난받을 소지를 최소화한다.

김어준이 제작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더 플랜'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난 18대 대선이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사용한다는 기계로 조작 실험을 시도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투표지 분류기는 조작이 쉬워 얼마든지 기획할 수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해커를 거쳐 설계한 조작 데이터로 투표지를 분류한다. 조작된 결과가 나오자 실험 참가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사실 의도된 결과다. 조작을 기획했으니 조작된 데이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제작진이 사용한 기계는 선관위가 사용한 것과 다르다. 설사 같더라도 18대 대선과 유사한 조건에서 비교하지 않아 주장에 무리가 따른다.

이 영화의 말미에는 광화문광장을 배경으로 자막이 뜬다. '중앙 선관위는 우리의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거절했다.' 선관위는 "공식 취재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에 제작진은 일요신문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연락처를 받고 연락했으나 끝내 회신을 받지 못했다"며 "누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지 밝히기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변인실이나 공보실에 취재 요청도 하지 않고 허위 자막을 내보낸 셈이다. 이 영화는 관객 3만4225명을 동원했다. 그날, 바다는 53만9509명을 모았다. 후원금으로 20억3000만원도 받았다. 펀딩에 참여한 시민 1만6000여 명은 다큐멘터리가 진실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 기대는 제작진이 현실을 합리적으로 통제해야만 충족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작가적 정체성으로 이끌어낸 주관적 현실이자, 현실 가치에 대한 존경과 비판의 창조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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