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한국전쟁 휴전 후 65년간 북한에서 3명의 최고 지도자, 미국에서 12명의 대통령이 등장했지만 아직 양국 정상 누구도 서로 얼굴을 맞대 본 적이 없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 직전까지 갔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핵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쓸 수 있는 사안으로 풀이되는 이유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 제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수락해 성사된 북ㆍ미 정상회담은 성사 발표도 파격적이었지만 판이 깨지는 과정도 전격적이었다. 워낙에 골이 깊은 만큼 최종 만남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봤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깨질지도 몰랐다.
과거 북ㆍ미 간 긴장 관계가 벌어질 때마다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에 대한 날 선 경고를 해 왔다. 1968년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납치하자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북한이 스스로 초래한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희망한다"고 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69년 미 정찰기 격추로 31명의 승조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이번에는 도망칠 수 있었지만 다음 번에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표현하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나는 주민들을 굶기는 김정일을 싫어한다"고 표현했다.
북한의 맞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북한 조선 중앙통신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광대, 잡종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웬만한 대미 비난 발언을 무시하던 백악관도 이는 참지 못했다. 추하고 존중할 수 없는 표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신에는 그의 사업가적인 기질이 다분히 담겨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신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각하(his excellency)'라고 불렀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지난해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으로 불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변화다. 협박성 문구도 있었지만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들을 풀어준 것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라고 단정하면서도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북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한 의도가 엿보인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서신에 대해 발표한 담화에서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과거 같으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어느 대통령도 못한 용단을 내렸었으며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며 희망을 남겼다.
쇠뿔도 단 김에 뺄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필요한 시점이다. 급히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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