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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오월! 그날을 다시 기억한다

최종수정 2018.05.17 12:15 기사입력 2018.05.17 12:08

영화 속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김지훈 감독作 '화려한 휴가' 계엄군에게 곤봉으로 맞고 피가 튀는 장면 직설적 묘사
이창동 감독作 '박하사탕'ㆍ김현석 감독作 '스카우트' 시간여행ㆍ속죄로 상흔 표현
장훈 감독作 '택시운전사' 실화 기반 충격적 현장 재현...각자의 방식으로 역사의식 환기

영화에는 역사와 대중의 기억이 공존한다. 정치ㆍ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도 다양한 시선으로 재현된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광주의 시대정신을 조명하며 역사의식을 환기한다. 우리 사회와 문화에 내재한 다양한 담론을 끌어내 새로운 역사성을 구현한다. 방법은 제각각이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루는가 하면 소재로 차용한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2007년)'는 전자에 해당한다. 구술 자료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뼈아픈 역사를 재구성한다. 묘사는 상당히 직설적이다.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곤봉으로 맞는 사진 등 대중이 연상하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이 폭력은 강민우(김상경)와 박신애(이요원), 강진우(이준기)가 문화극장에서 영화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를 관람하는 신에서 처음 등장한다. 극장 안에 최루탄 가스가 퍼지는데, 이내 군인 한 명이 문을 열고 나타나 한 젊은이를 때린다. 구타는 관람객들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나온 극장 밖으로 이어진다. 군인들이 욕설을 하며 곤봉을 휘두르는데, 이주일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에 두 차례 피가 튄다. 그걸로 부족했는지 분대장은 부하들에게 씩씩거리며 명령한다. "야, 이 새끼야. 이 새끼도 잡으라고. 싹 잡아버려."



평범한 사람들이 당하는 폭력이다. 시대의 두려움에서 도망쳐야 했던 인물들을 통해 사건의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특별한 해석은 기대하기 어렵다. 재현에만 무게가 쏠려 특수한 소재로서의 역사를 너무 쉽게 다룬 느낌이 강하다. 특히 군인들이 왜 학살을 자행하는지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당시 광주 시민들의 역사인식은 물론 시대정신도 거의 엿볼 수 없다. 영화적 허구와 상상력의 결과물로 인식될 여지를 남겼다. 광장이 아니라 개인의 드라마틱한 삶에 한국의 역사와 가치관을 투영해 관객의 통곡을 짜낼 뿐이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년)'과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2007년)'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고도 그 상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정서적으로 순수성이 잘려나가고, 폭력성으로 그 안이 채워지는 과정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도 함께 펼친다. 박하사탕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활용한다. 격변의 세월을 겪으며 무너져버린 김영호(설경구). 절망적 상황의 근원은 1980년 5월을 가리킨다. 김영호는 자신이 타야 할 군용차를 찾지 못할 만큼 어리숙하다. 선참의 도움을 받아 오른 트럭에서 그는 면회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윤순임(문소리)을 발견한다.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멀어진다. 안타깝게 그녀를 바라보며 군가 '용사의 다짐'을 부른다.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바쳐. 충성을 다하리라, 다짐했노라. 눈보라 몰아치는 참호 속에서 한 목숨 바칠 것을 다짐했노라." 해질 무렵 당도한 도로의 이정표는 광주역을 가리킨다. 군인들의 추격에 시민들이 서둘러 도망치는데, 김영호는 잡으러 갈 수 없다. "(군화에) 물이 들어갔어요." "이거 피잖아, 새끼야. 너, 총 맞았네." 무기력하게 파괴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순수로의 회귀를 꿈꾸지만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오히려 변질되어 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역행하는 기차를 통해 나타난다.



스카우트는 '야구 천재' 선동열을 포섭하려는 Y대학교 스카우트 호창(임창정)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린다. 주요 갈등은 호창과 세영(엄지원)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호창은 과거 Y대학교 야구부에서 점거 농성하는 학생들을 해산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시위 진압에 나선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한 터라 어쩔 수 없이 배트를 움켜쥔다. 아끼던 야구부 후배가 시위대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하자 흥분한 나머지 시위대 학생들을 향해 배트를 휘두른다. 세영은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그의 곁에서 멀어진다.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호창은 선동열이 입은 줄무늬 유니폼을 보고 당시 기억을 떠올린다. '형은 야구복이 제일 잘 어울려. 줄무늬만 아니면요." 호창은 경찰에 연행된 세영을 가까스로 구하지만,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행방불명된다. 속죄와 구원을 이루는 순간, 다시 폭력의 시간이 시작된 셈이다. 김현석 감독은 그 상흔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명시한다. 세영이 TV에 나오는 선동열을 보며 호창을 떠올린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6년)'은 이 상처를 보다 직접적으로 부각한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죽어가는 엄마(이영란)를 두고 도시를 빠져나온 소녀(이정현)의 정신이상 후유증이다. 1980년 5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구제 방법이다. 장선우 감독은 이 사건을 조금 특별하게 조명한다. 소녀나 그녀의 어머니를 비추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처럼 다양한 시선으로 광주 시민들의 행위를 포착한다. 관객이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계엄군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피로 표현된다. 소녀가 시체들과 함께 군용차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내가 거기 왜 탔는지…. 몸에 피가 묻어서 사람들이 죽은 줄 알았나봐. 얼굴 없는 사람들, 구멍 난 사람도 거기 탔었어. 그런데 너무 무서웠던 건 거기 엄마가 타고 있을까봐." 소녀의 회상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가학적이고 참혹하다. 아물 수 없는 상처를 통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잊고 싶어 하는 '편리한 사고'를 매섭게 질타한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년)'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다. 당시 사건을 전 세계에 최초로 보도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화를 기반으로 충격적인 현장을 재현한다. 주인공인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과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우여곡절에는 유쾌함과 아이러니가 있다. 본분과 성격의 차이가 빚는 재미다. 절대 권력을 향한 시민들의 투쟁을 그린 장면은 이와 성격이 판이하다. 힌츠페터의 카메라를 통해 나타나기도 하는데,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슬로우 모션으로 그려진다. 자유를 외치는 시민들과 소총 탄피, 사방으로 번지는 핏방울 등의 장면과 함께 몽타주 편집으로 엮여 공포와 슬픔을 동시에 유발한다. 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주제의식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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