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여담]'그리움'을 향한 미안함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너를 남기고 온/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어쩌자고 잠을 깨어/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용악의 '그리움'이라는 시다. 개인적으로 신경림의 '파장'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시다. 이용악이 이 시를 쓸 때 처한 상황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오롯이 시만 대했을 때 풍경화처럼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지고 밀려드는 따뜻한 그리움의 느낌이 좋았다. 살면서 이처럼 처절하게 아픈 그리움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런 감정들이 삶에 대해 생각을 더 풍족하게 해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사무치는 그리움의 감정을 함부로 담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은 2014년 겨울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 겨울 편이 이용악의 그리움이었다. 느낌은 사뭇 달랐다.

광화문은 그해 여름,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잃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목이 터져라 울분을 토해낸 곳이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광화문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토해낸다는 것이 저런 것인가 싶었다. 그 어머니와 아버지가 토해내는 그리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볼티(볼) 한번 만져보고 싶다." 대학 시절 어머니와 통화 중 종종 들었던 말이다. 수화기 너머로 허기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아들과 딸을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된, 희망이 사라진 그리움, 그래서 한이 된 그리움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기에 함부로 아픈 그리움을 담으려 했던 마음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