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도시이야기]북촌 한옥마을 출생의 비밀 아시나요?

북촌 한옥마을 전경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서울 도심지에 빽빽히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을 피해 정서적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북촌이다. 북촌 한옥마을 사이 고즈넉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치 시간이 수백년 전으로 되돌려진 듯한 느낌을 종종 받게된다. 공간이 만들어 낸 시간에 대한 오해.

그런데 이 북촌 한옥마을이 20세기 한 디벨로퍼에 의해 만들어진 기획도시라는 점을 아는 이는 드물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 관직자들이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잡은 북촌에 주로 거주해왔기 때문에 한옥마을도 이들이 머물던 집이거나 복원된 게 아닌가 하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할 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오해다. 북촌을 비롯해 익선동, 혜화동, 성북동 등 오늘날 서울 내 대표 한옥마을 단지들은 20세기 초 조선 건축가 정세권(1888~1965) 선생에 의해 개발됐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가 그의 생애를 정리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를 보면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정 선생은 1920년대 일본이 계획적으로 북촌 진출을 시도하며 조선인들의 주거지를 위협하자 한옥집단지구를 만들어 이에 대응했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인들의 주거권을 지킨 동시에 집단 거주를 통한 연대의식 고취, 여론 형성 등을 의도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사료에 의하면 정 선생은 일제 치하 당시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를 후원하고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하는 등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본인의 건물에 국산품 장려 민족운동단체인 조선물산장려회 사무실과 전시관을 개설, 단체의 황금기를 이끌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으로 그는 일본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재산을 강탈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가 세운 건양사라는 부동산회사가 문을 닫은 것도 한옥 대신 일본식 주택을 짓도록 요구한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거부한 것에서 비롯됐다.

물론 부동산 업자였던 그가 민족만을 위해 한옥마을을 만든 것은 아닐게다. 한옥마을은 사업 이윤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아파트와 비슷하다. 한정된 토지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살게해 사업성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익선동과 혜화동 일대 한옥마을에 가보면 하나의 큰 기와 지붕에 여러 가구가 붙어있는 집이 많다. 단위당 주택 규모도 기존 한옥집에 비해 작다. 공사비를 줄여 합리적 가격에 많은 서민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선인의 인구 급증과 일제의 토지 대량매입 등 열악한 조건에도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가격 경쟁력과 개발 효율성을 모두 고려한 전략으로 태어난 게 한옥마을인 셈이다.

오늘날 한옥마을은 대청에 유리문을 달거나 처마에 함석지붕을 대는 등 현대적 분위기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인근엔 미국식 레스토랑과 유럽식 카페 등 이국적 분위기도 만들어지고 있다. 한옥마을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절대 변하지 않을 가치는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보여준 도시개발 철학일 것이다. 각종 개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이나 수지 타산에만 열을 올리는 건설사들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