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주관방송사 '스카이스포츠'의 축구패널 폴 미어슨은 아르센 벵거 감독이 올 시즌 종료 후 아스날을 떠난다고 발표하자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어슨의 제안은 어느 평가, 분석보다도 벵거 감독의 아스날 22년을 가장 잘 함축한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벵거 감독이 아스날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또한 경제학 석사(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출신인 벵거 감독이 축구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도 평가 받는다.
아스날은 2006년부터 하이버리 구장을 떠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새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벵거 감독이 아스날 지휘봉을 잡고 10년 만의 일이었다. 아스날은 이 과정에서 대박을 냈다. 이전 120년 간 사용했던 하이버리 구장을 무너뜨리고 '하이버리 스퀘어'라는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건설해 떼돈을 벌었다. 2010년의 경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설 등을 위해 빌린 은행돈 1억2960만파운드(약 1947억원)를 전액 상환하고 전체 매출도 3억1300만파운드(약 4703억원)에서 3억7990만파운드(5708억원)로 올랐다. 에미레이츠 항공사와는 2004년부터 경기장 이름을 비롯해 유니폼 메인스폰서십을 체결하며 확실한 자금 지원 파트너도 얻었다.
하지만 이도 영원하지 않았다. 벵거 감독도 결국 떠나야 했다. 그의 퇴장은 한편으로 더 이상 그의 '경제적인 축구'가 세상에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영국 현지 전문가들은 본다. 벵거 감독은 유망한 선수들을 위주로 선수단을 구성했지만 시대는 그와 다르게 돌아갔다. 최근 5년 사이 아스날과 우승을 경쟁하는 팀들은 거액의 이적료를 들여 선수들을 사고 투자의 비중을 높였다. 이에 맞서야 했던 아스날 선수들은 경험 부족 등을 이유로 매 시즌 우승경쟁에서 밀려났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은 지도자의 철학도 바꾼다. 벵거 감독도 점점 바뀌었다. 2013년 메수트 외질을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인 4250만 파운드(약 638억원)에 영입한 것이 사실상 분기점이었다. 외질 이후에는 아스날은 이적시장 때마다 실력이 검증돼 있는 선수를 값비싸게 영입하는 데 더 주력했다. 하지만 가격과 선수들 능력에 대비해 성과가 없었다. 부상이라는 변수가 항상 걸림돌로 나타나 그를 막아섰다. 벵거 감독 스스로도 좋은 선수를 길러내는 데는 능했지만 값비싸고 좋은 선수들을 데려와놓고 조화를 이루는 데는 어려워했다. 벵거 감독은 "선수들에 대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것은 없다"고 하기도 했다. 가격과 선수들의 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그 스스로 혼돈이 생겼음을 알려주는 한마디였다.
성적은 매 시즌 지지부진해 팬들의 원성은 높아졌다. 팬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팀의 흑자보다는 우승 트로피를 원했다. 올 시즌에는 거액의 투자를 한 맨체스터시티가 정규리그에서 우승했다. 돈 지출과 선수 영입에 대한 요구는 매년 늘어날 것이고 벵거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두고 더 심한 갈등을 할 것이 뻔했다. 이러한 흐름들이 벵거 감독의 작별인사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방송은 벵거 감독의 올 시즌 후 사임 발표에 대해 "한 시대가 끝났다"고 짧고 강하게 표현했다. 벵거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지도자 은퇴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함께 시대의 이름을 걸만한 족적을 남긴 명장으로 평가 받는다. 아스날은 다음 시즌부터 그의 그림자를 이제 지우는 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됐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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