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안에 사냥개를 많이 길러서 때로는 조회(朝會) 때에 함부로 드나드니,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사냥개들이 궁궐 뜰에 무리를 지어 짖는다 하는데, 남이 보기에도 또한 아름답지 못할 뿐더러 이것들을 길러 장차 어디에 쓰시려는 것입니까"/"왕은 항상 내정(內政)에 강아지 한 마리를 길렀는데, 그 턱밑에 방울을 달아 강아지가 방울 소리를 듣고 놀라 뛰면 이것을 매양 재미로 여겼다"
이것은 단순히 연산군이 동물을 좋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 성종 때 구축된 강력한 신권(臣權)을 최대한 견제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성종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해서 매를 기르거나 몽골에서 낙타를 수입해보려하거나 말을 키우려 하는 등 동물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는 기록들이 제법 많다. 하지만 그때마다 신하들은 이에 반발하며 축생에 관심을 쏟다간 망국의 길로 빠진다고 공격했다. 결국 성종은 자기 마음대로 새 한마리조차 길러보지 못하고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연산군에게 동물을 마음대로 기르는 것은 단순히 순수하게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대놓고 마음껏 반려동물을 길렀던 임금은 드물다. 대부분 왕권이 신권을 완전히 압도해 전제 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임금들만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다. 대부분 왕권이 막강했던 태조, 태종, 연산군 등 왕조 초창기 임금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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