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이건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한 구절로 보통 '황금률'로 불린다. 본래 황금률은 '금쪽 같은 가치가 있는 법칙'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어야 마땅하다. 한데 그리스도교의 윤리를 집약한 이 말을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되었다. 로마시대 어느 황제가 이 말을 새겨 넣은 금 액자를 만든 데서 유래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있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장황해졌다. 실은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을 지켜보다가 떠오른 '말씀'들이다. 피감기관의 돈으로 인턴을 데리고 둘이서 외유성 출장을 갔느니 마느니, 예산이 증액이 됐느니 아니니 해가며 논란을 벌이는데 참 볼만하다.
정부여당의 수비는 강고하다. 야당은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ㆍ보수를 막론한 거의 모든 언론이 비판적인데 "국민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받아들이지만" 해임할 정도는 아니란다. '관행'이라느니 '실패한 로비'라는 볼멘 소리까지 동원된다. 이를 두고 "야당 시절엔 그리 추상 같이 공격하더니 이제 와 관행이라느냐" "실패했다고 처벌 않는다면 강간미수범 같은 건 왜 처벌하느냐"는 반론이 쏟아진다. 음모론이나 예산안의 '부대의견'이란 걸 알게 된 것은 덤이다.
다시 '황금률'로 돌아가자. 예수와 공자의 가르침은 다양한 변용이 가능한데 그 밑바탕은 '나와 남,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는 거다. 이른바 맹자가 말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다. 다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무리한 욕심이나 몰인정한 처신을 할 일이 없기에 권하는 가르침이다. 실제 나와 다른 사람을 똑같이 놓고 호불호(好不好)와 유불리(有不利), 당부당(當不當)을 헤아린다면 세상이 평화롭고 정의로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진영에 따라, 처지가 바뀌었다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나 옳고 그름의 잣대가 바뀐다면, 즉 '내로남불'을 고집한다면 이는 역지사지가 아니라 '억지사지(死地)'로 가는 길이다. 억지를 부리다 패가망신에 이를 것이란 얘기다.
물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수'가 바뀌었다 해서 불과 몇 년 만에 변한 '소신'은 '강짜'로 보인다. 아니, 전 정권에 대한 재판에 비춰보면 어쩌면 '죽을 꾀'로.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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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려고 맞았는데 아이가 생겼어요"…난리난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