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뒤집는 건 보통 궁지에 몰린 쪽이 하는 일이다. 시장 1위 사업자는 최대한 현행 구조를 유지하려고 한다. 수성(守城)이 제일 전략이다. 그런데 최근 이동통신시장에선 이런 일반론이 설 자리가 없다. SK텔레콤이 시장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이달 초에는 약정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무약정 고객에게도 요금납부 등이 가능한 포인트를 제공하기로 했다. 국내 이통사 최초로 선택약정 할인반환금 구조도 전면 개편해 소비자의 위약금 부담을 낮췄다. SK텔레콤은 8개의 프로그램을 예고했고 현재까지 2개의 안이 나온 상태다.
박정호판 '언캐리어(Un-carrier)' 전략이다. 기존 이통사의 관행과 대비되는 탈통신 전략의 실현이다. 그는 지난달 스페인에서 열린 2018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MNO 사업의 방향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객이 싫어하는 건 하지마라."
티모바일은 성공했다. 시장 변동성이 적은 통신시장에서, 티모바일은 언캐리어 전략을 통해 4위에서 스프린트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SK텔레콤은 이미 한국에서 점유율이 48%에 달하는 과점적 1위다. SK텔레콤의 언캐리어 행보에 경쟁사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손익계산을 철저히 따져서 나온 결과로 봐야겠지만, 처음 SK텔레콤의 로밍요금 개편안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저런 결정을…'이란 생각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10원 단위 요금까지 그대로 베껴가는 관행의 이통시장이지만, 최근 SK텔레콤의 언캐리어 전략은 쉽게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의아할 정도로 파격적인 조치에 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보편요금제 등 통신비 인하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정치적 압력에 의한 변화가 크다고 본다"면서 "보편요금제 도입 압력을 피해가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또 이통시장의 품질 상향평준화로 인한 서비스 경쟁력 필요성도 있다고 봤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통신요금인하 압력이 이통사를 거쳐 이제는 정부와 유통의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통사가 이렇게 선제적으로 요금인하 방안을 내놓는 이상, 추가적인 통신비 인하의 책임은 제조사, 또는 유통망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판매장려금 등) 과다한 유통비용 감소로 오히려 통신비용 감축을 기대할 수 있다"고도 했다.
같은 취지에서 '자진납세'가 실익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료 폐지, 한·중·일 로밍요금 폐지 등 정부가 대통령 선거공약을 강행할 명분이나 필요성을 잃게 될 경우, 최근 이통사들의 요금제 개편은 손해보다 이익이 큰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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