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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따찌/오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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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따찌가 독가시치다
등지느러미와 배 밑 지느러미에 살벌한 독가시
처남이 칼바람 속에 낚아 올린 따찌가
대포항 검은 바위 물웅덩이에서
세속 공기에 사래 들려 캑캑댔다
순간 중학교 수산업 선생님의 입술이 떠올랐다
물고기가 도랑 속에 갇히면 고민사(苦悶死)를 한다
수족관 속에 오래 갇힌 횟집의 물고기들은
죽음의 공포와 함께 자신의 내장을 파먹는다
바다를 차고 낚시에 꿰여 올라온 물고기는 즉사
그러니까 바로 바윗돌에다 대가리를 때려야 한다
느닷없이 고민사하고 있는 따찌를 보며
저 고통받는 짐승을 거두어 주리라 생각하고
따찌의 꼬리지느러미를 잡는 순간
아뿔싸, 날 선 독가시
저승 문턱에서 뽑아 올린 독가시가 파닥이며
내 엄지손가락을 겨냥했다
맹독의 바다가 온몸을 훑으며 전율했다
장모님은 눈물 그렁그렁한 사위를 보며
물썰 때쯤 돼야 아픔이 가신다 하셨다
그날 이후 따찌는
내 몸 깊숙한 우물 속에 산다


■"고민사"라는 말은 이 시에서 처음 보았다.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모두 잘못되었고 따라서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만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고민사"도 생의 심처로 우리를 이끈다. '고민'은 '근심'이나 '걱정' 그리고 '번뇌', '번민'과 가까운 말로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이라는 뜻이다. 도랑 속에 갇힌 물고기의 심정이 꼭 그럴 것이다. 그리고 "세속 공기에" 고통받고 있는 물고기를 차라리 "거두어 주리라" 마음먹는 일이야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나 "맹독의 바다"를 품고 있고 "독가시"가 있다. 그러니 진정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고통에 찔릴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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