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아성이 무너진다"고 할때 '아성', 대체 어디일까요?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과장된 형태로 등장하긴 했지만, 보통 서양의 아성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성처럼 전시에 모든 잔여 병력이 집결해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사진= 영화 '반지의 제왕' 장면 캡쳐)

과장된 형태로 등장하긴 했지만, 보통 서양의 아성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성처럼 전시에 모든 잔여 병력이 집결해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사진= 영화 '반지의 제왕' 장면 캡쳐)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보통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특출난 성과를 냈던 기업에서, 매출이나 이익 등 퍼포먼스가 타 경쟁사에 밀려 1위 자리를 뺏겼을 때 '아성이 무너졌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아성(牙城)'이란 한자 뜻풀이만 보면 일단 뒤에 성이 붙은 걸로 봐서, 성의 일부에서 온 표현임은 확실하지만 정확히 어디를 뜻하는 단어인지 바로 알기는 힘들다.
아성의 원래 의미를 쉽게 이해하려면, 영어로 아성을 뜻하는 단어를 살펴보면 된다. 영어로 아성은 'Keep', 혹은 'Stronghold'라 쓰인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 성의 최상부에 위치한 네모 반듯한 두터운 요새탑을 뜻한다. 전방의 성벽이 함락되고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 살아남은 병사들이 들어가 끝까지 항전하는 최후의 보루를 뜻한다. 그래서 중세시대에도 주로 그 지역의 임금이나 영주들이 거처했고, 비상시에는 군사 지휘부가 들어서곤 했다.

중세시대 아성의 일반적 형태.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기 힘들게
 높고 두터운 요새탑 형태로 지어졌다.(사진=위키피디아)

중세시대 아성의 일반적 형태.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기 힘들게 높고 두터운 요새탑 형태로 지어졌다.(사진=위키피디아)

원본보기 아이콘


영어에서 동사 'Keep'이 지키다, 유지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도 이 단어의 의미와 연관이 깊다. 사실 동양권에서는 축성방식이 서양과 달라 이 단어를 그대로 번역할만한 뜻을 가진 단어는 없었지만, 고대부터 전장에서 총 사령관이 위치한 성(城)을 의미하는 단어인 '아성'이란 단어로 풀었다.
이 아성이란 단어에 상아를 의미하는 어금니 '牙'자가 붙게 된 이유는 고대 중국에서 대장군의 깃대 끝에 상아장식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깃발은 '아기(牙旗)'라 불렸고, 아기가 꽃힌 성을 아성이라고 불렀다. 영토국가 개념이 오래전부터 시작된 동양권에서는 서양과 같이 지역 영주들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아성보다는, 사령관의 거주지란 의미로서의 아성이 더욱 강조됐던 셈이다.

물론 아시아권에서도 이 아성과 매우 비슷한 개념이 건축물이 있는 나라가 있다. 다름아닌 일본이다. 서양의 중세시대와 비슷하게 지역 영주들간 각축전이 오랫동안 전개됐던 일본은 이른바 '천수각(天守閣)'이라 불리는 아성이 발달했다. 타 지역과 경계지역에 성벽을 쌓거나, 산성이 발전한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유독 영주 개인의 방어에 전념하는 아성이 주로 발전한 이유는 전투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일본 오사카성 천수각과 성곽모습.(사진=오사카 관광국 홈페이지/https://osaka-info.jp)

일본 오사카성 천수각과 성곽모습.(사진=오사카 관광국 홈페이지/https://osaka-info.jp)

원본보기 아이콘


중앙집권적인 왕조가 오래 전부터 구축된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전시에 수도 전체를 둘러싼 도시 성곽과 국경지역을 방어하는 장성(長成)이 중요한 방어시설이었던데 비해, 주로 지역 내전을 치르던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들 입장에서는 영주 개인의 요새성이 훨씬 중요했다. 보통 전투 규모가 크지 않고, 지역민들이 영주 편을 들면서 목숨걸고 싸우지도 않는데다 영주의 개인사병이 모두 패배해 다이묘와 수하 사무라이들만 할복하고 나면 지역주민들은 새 주인을 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구 봉건사회의 중세시대 전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대 국민국가란 개념이 도입되기 전에 전쟁은 철저히 영주들과 그의 개인 사병들간의 전투였으며, 농민들은 전쟁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부 군대가 해당지역을 약탈하거나 지역민을 해칠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민병대를 구성해 적과 싸울지 몰라도 봉건계약 관계로 얽힌 영주를 위해서 목숨걸고 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부동산에 매물로 나온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성(사진=http://ko.lionard.com)

부동산에 매물로 나온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성(사진=http://ko.lionard.com)

원본보기 아이콘


그러다보니 중세시대 이후 서양 귀족들은 아성의 방비를 위한 투자를 많이했다. 이것이 고착화되면서 대포 등 각종 화약무기로 사실상 과거 아성의 군사적 효용성이 떨어진 뒤에도 권력 과시용으로 아름다운 성들을 경쟁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디즈니랜드 이미지에 주요 모티브가 된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비롯해 오늘날엔 관광지로 사랑받는 수많은 서양의 성들은 이런 이유로 탄생했다.

이 중세 천년을 버텼던 아성들이 주인을 잃고 무너진 것은 19세기, 근대화 물결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수백개가 넘던 일본의 천수각들은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허물어지기 시작해 현재까지 살아남은 천수각은 10여개에 불과하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유럽의 아성들 중 유명한 성들은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그렇지 못한 성들은 부동산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가기도 한다. 막대한 유지비에 비해 난방과 편의시설, 도시와의 접근성 등은 형편없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우리나라 강남아파트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팔리곤 한다. 시대의 변화가 휘황찬란했던 아성들을 자연스럽게 허물어뜨린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