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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이발소 앞을 지나며/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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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이발소 회전등이 순찰차처럼
활발히 돌고 있다
나를 기다리며 돌고 있다

생각느니, 어느 날
내가 머리를 단정히 깎고 먼 길을 가서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것과
이발소가
문을 닫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그것은
칠 년 동안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어루만져 주던
사람과 아주 헤어지는 것
그리하여,
나는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이 거리의 제일가는 이발사
저 팔십 노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것이다

[오후 한 詩] 이발소 앞을 지나며/윤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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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는 말, 참 애틋하지 않은가. 불가에서는 하늘의 선녀가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와 목욕을 하는데 그때 선녀의 치마가 큰 바위에 닿아 그 바위가 다 닳는 동안을 일컬어 '겁(劫)'이라고 한다. 혹은 망망대해에 구멍이 뚫린 널판자가 둥둥 떠다니는데 바닷속을 헤엄치던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씩 머리를 내밀다가 어쩌다 그 머리가 널판자에 끼게 되는 세월을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아득하여라, 전생에 오백 겁의 인연이 이루어져야 살아생전 옷깃 한 번 스칠 수 있다니. 이에 더하여 이웃은 오천 겁, 부부는 칠천 겁, 부모와 자식은 팔천 겁, 형제와 자매는 구천 겁, 스승과 제자는 일만 겁의 인연이 맺어진 바라고 한다. 아무리 길을 가다 단 한 번 스치고 마는 사람일지라도 그이를 다시 만나려면 헤아릴 수 없는 무연함을 오백 번이나 되풀이해 건너야 한다는 말이 된다. "사람과 아주 헤어지는 것"이라는 문장 가운데 "아주"는 그러니까 어떤 단념이나 냉정을 품고 있다기보다는 전혀 돌이킬 수 없는 까마득함과 그래서 오롯이 "기원"으로밖에는 표할 길 없는 절절함을 도무지 숨길 수 없었던 발로인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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