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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왜 이태원엔 외국인이 많을까

최종수정 2018.03.09 09:57 기사입력 2018.03.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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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경리단길

이태원 경리단길



'이태원' 한자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
백년간 청·일·미군 주둔지 역할
최근 젊은이 핫플레이스로 변신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서울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이태원'이다. 길거리 케밥집에서부터 유럽식 카페, 미국식 브런치 가게, 동남아 음식점, 영국풍 펍까지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상가도 즐비하다. 오늘날 이태원에 외국인이 많이 모이게 된 것은 지금은 평택으로 이전한 미군기지의 영향이 크다.

광복 이후부터 이태원과 삼각지, 용산로 인근에 주한미군사령부와 미8군사령부가 주둔을 시작하면서 이태원 주변은 이들의 여가와 유흥에 맞춰진 상가가 많이 들어섰다. '용산합중국'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이 시기다. 이태원에서 삼각지로 이동하는 길목엔 외국인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헤밀턴 호텔, 캐피털 호텔, 크라운 호텔, IP뷰티크 호텔 등 숙박시설도 많아졌다.

이태원에 소수 민족이나 혼혈, 이주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외국인이 모여 살게 된 것은 조금 더 특별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태원의 한자명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인 1400년대 이태원의 표기는 '李泰院'이었다. 조선시대 왕들의 성씨인 '오얏나무 리(李)'를 쓴 것으로 봐서 왕의 성씨를 사용했거나 이태원 부근에 오얏나무가 많아 그런 한자어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00년대 즈음엔 다를 '이(異)'와 아이밸 '태(胎)'를 써서 異胎院으로 표기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강제로 임신시킨 후 낳은 이들이 이태원에 모여살게 되면서 한자어가 달라졌다는 설(設)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주장은 왜나라 사람이 이태원에 많이 모여 살면서 다를 '이(異)', 다를 '타(他)'를 쓴 이타인(異他人) 혹은 이태인(異胎人)으로 부른 데서 이태원이라는 지명이 유래됐다는 얘기도 있다.

조선 효종 때인 1600년대부터는 배나무 '이(梨)'를 쓴 梨泰院으로 표기했다. 당시 배나무가 많아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는 주장의 근거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이태원은 본래 지명이 아닌 조선시대 때 설치한 원(院)의 이름인데 여기에서 이름 붙여졌다'는 유래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원은 출장을 떠난 관리를 위해 나라가 마련한 숙박시설이다.

이태원은 다양한 역사적 사연이 있다. 임오군란(1882년)때는 청나라 부대의 주둔지였다. 경술국치(1910년)엔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있었다. 광복 이후엔 미군기지 정착지였다. 100년이 넘도록 외국인의 집단 거주촌 역할을 한 셈이다.

현재 이태원은 잃어버렸던 '민족 정체성'을 되찾고자 노력 중이다. 미군 기지가 완전히 이전한 후 첫 삽을 뜨게 되는 사업도 최초의 국가공원인 '용산민족공원(243만㎡)'이다. 미군기지 이전 후 이태원 주변 유흥업소 다수는 문을 닫았다. 이태원 경리단길을 찾는 젊은이가 늘어나면서 상권도 살아나고 있다. 올해 1월1일 기준 이태원 경리단길의 전년 대비 표준 공시지가 상승 폭은 14.09%로 서울 주요 상권 중 톱3에 올랐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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