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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환상 속의 그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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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한 때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였던 '철학에세이'에 나오는 그림처럼. 선글라스를 쓰고 점퍼를 입은 남자가 포승줄에 묶여 앞장 서고, 뒤에는 경찰이 그 줄을 쥐고 있다. 다른 그림에선 반대다.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이 묶여 있고 점퍼 입은 남자가 포승줄을 쥐고 있다.

보기엔 반대지만 본질은 같다. 두 번째 그림은 사복 경찰이 경찰 행세를 하던 범죄자를 잡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현상과 본질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처럼, 마이크를 쥐고 열창하는 듯 연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같다.

쉽게 말하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일이 적지 않은 게 세상사다. 이제 순수를 상징하던 이름들은 훼손됐다.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을 것 같았던 문학과 연극, 영화판이 작살나고 있다. '천만요정'의 추락은 의미심장하다.
잔인한 욕망에 대한 폭로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는 한 때 순수와 혁명을 꿈꿨던 한 정치인이 가장 추한 이유 중 하나로 정치 인생을 내려놓게 됐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 몸을 팔고 육체의 노동을 팔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저 밑바닥 사람들에게 사람다움은 사치였다. 활자로 읽은 부조리와 불의, 사회경제 체제에 내쳐진 이들이 바로 곁에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 돌아누웠다. 그리고 혁명을 결심했다." 그가 쓴 '안희정의 함께, 혁명' 중 한 대목이다. 낮은 이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치열한 실천의식은 이제 더 이상 조명을 받기 어렵겠다. 이제 대중은 그를 부끄러워하고 돌아섰다.

가히 세상에 대한 인식의 한 축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나날들의 연속이다. 겉으로는 명예를 중시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뇌물을 주고 받고, 군대는 빼주면서 회사는 넣어주는 등 온갖 부조리의 도가니인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발 디딜 틈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다. 서태지의 노래처럼 '환상 속의 그대'들이었고,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한 무너짐은 제대로 다시 설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다행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불신이다. 누구도 믿지 못할 것 같은. '미투'는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 모르겠다. 회복이거나 새로운 시작은 최대한 털어낸 이후에 가능하니까. 어릴 적 엉덩이에 초대형 종기가 나서 아버지가 피를 튀기는 사투 끝에 고름을 짜내줬던 기억이 있다. 최대한 없애야 다시 곪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정말 아팠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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