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연금생활자와 그의 아들/장이지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아버지는 하급 공무원이었다.

사람들은 비웃으면서도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
그것은 시시한 일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그 시시한 일로 가족을 먹여 살리셨다.
실패의 관록을 차곡차곡 쌓아 가면서
마지막엔 늙은 연금생활자가 되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셨다.

어떤 이해도 없이
어떤 이해도 없이

앉아 있을 때,
모든 것이 허사였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아버지는 무엇을 보면서 저렇게 웃고 계실까.
마음은 자꾸 성을 낸다,
사실은 자신을 혐오하면서.


■아버지가 웃는다. 자꾸 웃는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는다. 일일 드라마를 보면서 웃는다. 회장의 며느리의 며느리가 실은 며느리가 버렸던 딸이라는데도 놀라지 않고 웃는다. 뉴스를 보면서도 웃는다. 화를 내지도 혀를 차지도 않으면서 웃는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웃는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대놓고 웃기게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를 보면서 그저 웃는다. 웃음기 하나 없이 웃기만 한다. 나를 보고도 웃는다. 걱정도 잔소리도 없이 웃는다. "아버지는 무엇을 보면서 저렇게 웃고 계실까." 늙은 아버지가 웃는다. 하냥 웃는다. 그렇게 어제처럼 아버지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한생이 다만 맥없이 시시하게 웃고만 있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