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나는 악역전문 배우 김의성의 또다른 모습
'남영동1985' '관상' '부산행' 등 때려주고 싶을 만큼 나쁜 배역 열연
줄잇는 악역 요청에 고민...잘못 거절했다간 밥줄 끊길 수도…최근 3년간 21편 출연 "빚 다 갚았다"
쌍용차 노동자 복직 염원 차량 구입...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기증 화제
잇단 선행, 스크린과 상반된 이미지 "이 한심한 이야기들이 위로가 되길"
'남영동1985(2012년)'에서 강과장은 야비하고 잔인하다.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를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데려가 고문한다. 사악하고 음흉한 분위기는 '관상(2013년)' 속 한명회의 얼굴에도 나타난다. 고개를 기울인 채 관상쟁이 내경(송강호)을 치켜보는 눈빛이 비열하기 그지없다. '부산행(2016년)'에서 자기 살 궁리만 하는 용석도 만만치 않다. 좀비 무리를 간신히 따돌리고 돌아온 석우(공유) 일행을 노려보며 바이러스 감염자로 몰아붙인다. 교활하면서도 비열한 기운은 모두 김의성(53)의 연기를 통해 실체를 얻는다. 관객의 공분을 자아내는데 달인이다. 강과장을 연기한 뒤 악역 요청이 쇄도한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 든 남자가 맡고 있는 위상이 악한인 것 같아요. 그걸 누가 하겠어요. 어쩔 수가 없죠. 그런 역이 많아요. (중략) 크고 작은 역할들을 해왔는데, 꾸준히 발전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 상태로 쭉 온 것 같아요. 그냥 쭉 오면서 낯설지만 믿을 수 있을 것을 팔아먹는 거지. 그런데 낯선 것은 조금 있으면 낯이 익어지잖아요. 그때 제 무기가 있지 않으면 다시 똑같아지는 거니까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기 전에 뭔가를 해야 된다는 부담이 좀 있었죠. 그런데 특별히 준비한다고 되겠어요. 그냥 어떻게 하다 보면,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건데요. 마음을 졸이는 거죠."
"사실은 나눔의 집이 키가 아니고, 쌍용차가 키였어요. 내가 혼자서 1인 시위를 할 때 이창근과 김정욱이 만든 티볼리를 타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요. 복직이 된다면 그들이 만든 차를 제일 처음으로 타고 싶다고 말했죠. 수사일 수도 있는데요. 어쨌든 이창근이 복직이 됐네요. 회사를 들어가 버렸네. 그냥 넘어가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전체 해고자들의 복직이 아니었거든요. 생각보다 이슈가 크게 다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이슈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찌됐건 쌍용차가 일부 해고자를 복직시킨 것은 굉장한 발전이니까. 사측을 칭찬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얘기들이 조금 더 뉴스에 많이 나와서 화제가 되게 하고 싶었어요. (중략) 결과적으로는 약간 실패한 것 같아요. 저는 되게 멋있는 사람이 됐는데요. 쌍용자동차 문제는 쏙 들어가고, 제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차를 드린 것만 부각이 됐어요. 저는 쌍용차 문제가 더 크게 얘기가 되기를 바랐는데, 뜻대로 안되더라고요."
스크린 속과 상반된 성격의 삶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이미지의 충돌을 일으킨다.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으로 묘한 매력을 전한다. 지승호 작가(52)의 물음과 김의성의 답변으로 구성된 '악당 7년'은 이 모순을 깊게 들여다보는 인터뷰 글이다. 다섯 차례에 걸쳐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언론 기사에서 보기 어려웠던 내용이다. 배우들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이나 직후에 라운드 인터뷰를 한다. 하루 종일 마흔 명 이상의 기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한다. 그러다보니 포털사이트는 천편일률적인 기사들로 자주 도배된다. 대부분 배우들이 욕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 방어적인 답변이다. 악당 7년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 색다른 재미를 전한다. 술자리에서나 꺼낼 수 있는 얕은 질문에도 솔직한 답변이 튀어나온다. 거의 편집되지 않은 채 날것 그대로 실려 포장마차 테이블에 동석한 느낌마저 준다. 불편한 다툼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답변에서 김의성은 자신의 발자취를 찬찬히 되짚어 본다.
"좀 이상하지만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에 응했다. 소위 실패한 내 인생 역정과 현재 느끼는 행복감 사이의 기묘한 괴리가 어쩌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읽을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심한 대화를 통해 웃고 위로받기를 바라며, 혹 상처받는 분이 없기를 또한 바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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