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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12살, 나는 시집가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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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으로 아동 결혼 폭발적 증가…15세 미만 예멘 소녀 44%결혼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언니들은 다들 시집갔어요. 아버지는 나도 억지로 시집보내려 하지만 나는 정말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CNN방송은 22일(현지시간) 예멘에 사는 12살 소녀 할리마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조혼, 아니 아동을 상대로 한 결혼이라는 말이 적절한 이 상황은 할리마만 겪고 있는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다. 극도의 빈곤과 뿌리 깊은 보수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예멘에서는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사실 예멘에서는 아동 결혼은 아주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예멘 속담 가운데 '8살짜리 소녀랑 결혼해, 그녀는 (처녀가) 확실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예멘의 아동 결혼은 최근 3년간 내전으로 더욱 심해졌다. 최근 통계에서는 예멘에서는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하는 비율이 3분의 2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을 정도다.

(사나<예멘> EPA=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어린이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동맹군의 공습 현장을 지나고 있다.
    이날 예멘 각 지역에서 있은 공습으로 어린이 11명을 포함 최소 48명의 민간인이 숨졌고, 55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나<예멘> EPA=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어린이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동맹군의 공습 현장을 지나고 있다. 이날 예멘 각 지역에서 있은 공습으로 어린이 11명을 포함 최소 48명의 민간인이 숨졌고, 55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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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마는 "나는 5학년이에요. 학교를 끝마치고 싶어요. 의사가 되고 싶거든요. 신이 허락해주신다면요. (하지만) 내 주변의 많은 학교 친구들은 시집갔어요. 나랑 친한 친구 중의 한 명은 학교를 관둔다고 했어요. 왜 관두냐고 물었더니 '내일 결혼식이어서'라고 했어요."
할리마의 언니 카파는 13살에 시집을 갔다. 남편은 그녀보다 15살 많았다. 카파는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학교에 다녀 교육을 받았을 거예요. 결혼하고 싶지 않았죠"라면서 "아이에 불과한 나로서는 결혼을 피할 방법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17살인 카파는 지난 4년간 4명의 아이를 낳았다.

CNN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면 일반 성인에 임신했을 때에 비교해 합병증 등의 위험이 크다고 했다. 카파 역시 매번 출산할 때마다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할리마의 아버지 압둘라는 생계 부담 때문에 딸들을 일찍 시집보냈다고 밝혔다. 실업자인 그는 현재 먹여야 할 식구가 자녀와 손녀를 포함해 모두 17명이다. 압둘라로서는 딸들을 일찍 시집보내는 것만이 생계비의 부담을 더는 길이다. 더욱이 딸들을 시집보내면 지참금도 챙길 수 있다. 그는 카파를 시집보낼 때 2000달러(214만 원)를 받았다. 압둘라는 카파를 일찍 시집보낸 것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할리마를 시집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사나<예멘> EPA=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콜레라에 감염된 한 어린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콜레라 환자는 50만명을 넘어섰으며, 4월 이후 약 2천명이 숨졌다.

(사나<예멘> EPA=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콜레라에 감염된 한 어린이가 치료를 받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콜레라 환자는 50만명을 넘어섰으며, 4월 이후 약 2천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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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라는 카파에게 말했다 "어린 나이에 널 시집보낸 이 아빠를 용서해주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려니 돈이 필요했어. 너를 결혼시켜서 너희 자매랑 네 엄마가 밥을 먹을 수 있었지. 그래서 선택을 해야 했었단다. 이제 너한테 용서를 빈다."

많은 예멘의 가장들은 이와 비슷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딸의 지참금을 받아 가족들을 먹여 살릴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굶는 것을 지켜봐야 할지. 세이브더칠드런의 대변인 나딘 드럼먼드는 "예멘에서는 식료품 가격은 2배, 생계비는 3배가량 올랐다"면서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집에서 딸들을 시집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유니세프는 예멘에 200만명의 어린아이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100만명이 콜레라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기아와 전염병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전쟁이다.

이 모든 악몽은 2015년 3월부터 시작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동맹군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에 대해 공격을 시작한 시점이다. 이날 이후로 예멘에서는 55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사우디 동맹군이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식량과 연료는 귀해졌다. 이미 유엔구호기금은 지난해 11월 "최근 수십 년 이래 최악의 기근이 예멘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나<예멘> EPA=연합뉴스) 예멘 전역이 콜레라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17일(현지시간) 수도 사나에서 주민들이 기증된 수도관을 통해 식수를 받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콜레라 환자는 50만명을 넘어섰으며, 4월 이후 약 2천명이 숨졌다.

(사나<예멘> EPA=연합뉴스) 예멘 전역이 콜레라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17일(현지시간) 수도 사나에서 주민들이 기증된 수도관을 통해 식수를 받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콜레라 환자는 50만명을 넘어섰으며, 4월 이후 약 2천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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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이 아동 결혼을 부추기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결혼 최저 연령제도를 두고 있지만 사실상 정부가 무너진 예멘은 이런 제도도 없다. 또 설령 이런 제도가 있어도 이를 강제할 방안이 없는 상태다. 곳곳이 빈곤에 허덕이고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생존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더욱이 아동 결혼의 나이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예멘 소녀 가운데 44%는 15살 생일이 되기 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할리마와 카파의 아버지 압둘라는 '딸들에게 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도 말했다. 압둘라는 "전쟁이 터진 뒤 머리 위로 로켓이 날아다녔죠. 폭격이 있을 때마다 집들이 무너지고, 온 집안이 흔들렸죠.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나한테는 딸들을 시집보내는 것 외에는 선택방안이 없었어요."

카파는 자신의 딸들은 절대로 일찍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결혼은 내가 아니라 애들이 원할 때 시킬 거에요. 절대로 나처럼 어린 나이에 결혼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내전이 계속되면서 카파의 바람이 이뤄질지는 의문이 커졌다. 매 순간 학교들이 부서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0만명의 아이들이 학교 바깥에서 공부하고 있다. 지속적인 폭격으로 상당수 학교가 사라졌거나, 파손됐기 때문이다. 교육이 안 되다 보니 소년들은 소년병이 되어 전쟁터로 가고, 소녀들은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오후 날 하교길 풍경으로 끝났다. 수업이 끝난 뒤 할리마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가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다. CNN은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할리마는 긍정적이었다고 소개했다.

"나는 좋은 미래를 갖기를 갈망해요. 다른 아이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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