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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 후]"아파트 단지내 도로가 사적 공간? 안전이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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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가장 안전해야 할 아파트 단지내 등 '도로외 구역'을 사적 자치 공간이라는 이유로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하고 있다. 시급한 실태 조사 및 처벌 강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대전 한 아파트 단지내 6살 어린이 교통사고를 계기로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에 대한 강력 처벌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ㆍ정치권이 '사적 자치권 보장'이라는 이유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이라는 공익을 위해 사적 자치권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에는 현재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여러 건 제출돼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6월15일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 등 10명이 개정안을 제출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적용 대상인 '도로'의 범위에 대학 캠퍼스 또는 아파트 단지 내의 도로도 포함시키자는 내용이다. 현재는 도로외 구역에서 뺑소니ㆍ음주 과로 운전 교통 사고를 제외한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횡단보도 사고 등의 중대 과실로 사고를 내도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면허 취소·사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소방관 부부의 6살 아이 사망 사고가 대표적 사례다. 가해자는 당시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와 어머니를 치어 아이가 사망하는 '12대 중대 과실' 사고를 냈다. 그러나 횡단보도의 위치가 단지내 도로, 즉 사유지라는 이유로 도로교통법을 적용 받지 않아 행정ㆍ사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민사상 손해 배상 책임 의무만 지고 있을 뿐이다. 소방관 부부는 이에 지난 14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이 부부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해야 하는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사유지 횡단보도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다시 똑같은 사건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날 오후4시50분 현재 10만8935명이 동의를 표시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파트 단지, 대학 구내, 사업장 내 도로, 노외 주차장 등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의 실태는 심각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213만 5000건, 연 평균 42만 7112건이 발생했다. 5년간 사망자 수는 421명, 부상자 수는 339만 7559명이었다. 도로외 구역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호수는 2005년 696만2689개에서 2010년 857만6013개로 23.2%나 늘었다. 대학교 면적도 같은 기간 8633만2619㎡에서 1억850만4253㎡로 25.7% 증가했다. 노외 주차장의 면적도 1090만9362㎡에서 1969만2335㎡로 80.5%나 급증했다.
그러나 정부ㆍ사법당국이나 정치권의 대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2011년 법을 개정해 음주ㆍ뺑소니에 대해서만 도로외 구역의 사고도 도로교통법상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긴 했다. 하지만 대학 캠퍼스ㆍ아파트 단지 내 등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발생한 중대 과실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 강화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박인숙 의원 대표발의안도 지난해 11월 상임위 전체회의로 넘어갔지만 아직까지 통과 여부가 미지수다.

이처럼 소극적인 처리는 '사적 자치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아파트 단지내 이동로 등은 특정한 사람과 차만이 통행하도록 관리되는 자치 영역에 해당한다. 이 곳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개입만 해야 한다는 게 그동안의 법논리였다. 이는 2015년 헌법재판소의 도로교통법 제2조제26호에 대한 위헌 심판 과정에서도 표출됐다. 당시 음주운전ㆍ뺑소니 사고는 예외적으로 도로외 구역 내에서도 형사 처벌하도록 한 법안에 대한 위헌 심판에서 김이수ㆍ서기석 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두 재판관은 "사적인 공간에서 교통 사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 또는 물건에 대한 극히 희박한 위험을 방지하고자 하는 공익이 반드시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어 과잉 금지 원칙에 반하여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이같은 원칙에 따라 "사적 자치 공간에서 일어난 경미한 사고까지 처벌할 경우 전과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며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들은 프랑스, 일본, 독일 등에서도 일반 교통용으로 제공되는 '도로'의 범위를 명확히 제한해 도로외 장소에서의 사고나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행정 처분·사법적 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들고 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해야 할 사적 자치 공간이 오히려 교통사고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사고 유발 행위에 대한 단속ㆍ처벌이 불가능하다. 사고가 나더라도 신고ㆍ조사를 하지 않아 공식적인 교통 사고 통계 조차 없다. 위험 실태에 대한 현황 조사 조차 진행된 적이 없어 위험 요인에 대한 개선도 없다. 대전 아파트 6살 아이 사고처럼 운전자들이 도로외 지역에서 교통 법규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까지 발생하고 있다. 미국 홍콩 등의 나라에선 도로교통법에 사도(私道) 구역이 명시돼 있어 도로와 유사한 수준의 운행 관리 및 사고 조사 대상이 된다.

한 교통전문가는 "도로외 구역도 도로교통법을 확대 적용해 교통사고 발생 통계를 관리하고 사고 특성을 토대로 시설 개선 및 안전 관리의 근거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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