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하얀 민들레/김영진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골목이 열기에 절인 훈제 같은 날,
담장에 기댄 낡은 리어카

간신히 서 있다. 홀로 살아온
슬레이트 집 앞에서
며칠째 양철 대문을 두드린다
인기척이 없다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다

문틈으로 보이는 앞마당
언제부터일까, 대야의
배추가 썩어 가고, 항아리 뚜껑에 쌓인
소금이 검게 변해 간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그릇들
그늘에 잠겨 대답이 없다
곰삭아 가는 마당 한구석,
활짝 피어 있는 하얀 민들레.


■슬레이트 지붕을 따라 도란도란 떨어지던 낙숫물들을 헤아리던 파란 양철 대문 집, 마당은 깊어 동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숨바꼭질을 하고도 지는 해가 아쉽기만 하던 집, 할머니가 종일 엿물을 고면 그 달큰한 내에 온통 나른해지던 집, 내가 살던 집,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딱지치기 대왕 앞집 종수 형도 소꿉놀이하던 건넛집 혜선이도 모두들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고 저 혼자 "그늘에 잠겨 대답이 없"는 집, 자꾸 무너져 "곰삭아 가는" 집. 그러나 놀라워라. "마당 한구석" 가득 "하얀 민들레"들을 다시 품어 모셔 두고 볕 바른 날 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집. 그렇게 "홀로 살아"오고 살아가는 집.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