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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저출산과 현대百의 '워라밸'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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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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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지난해 연말 일본 큐슈 지방의 작은 도시 구마모토를 방문했을 때다. 도착한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지만, 시내 중심가엔 유흥을 즐기는 인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규모 쇼핑 아케이드는 문 닫은 매장이 많았다. 며칠 뒤 이동한 온천의 도시 벳부도 마찬가지였다. 거리는 을씨년스럽게 텅 비었고, 시내에 한 개뿐인 백화점과 복합쇼핑몰도 한산했다. 특이한 점은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던 외국인들이었다. 영어도 일본어도 통하지 않던 이들은 손님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품을 매대에 진열하는 속칭 '까대기'에 집중했다. 인구가 감소 중인 일본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일본은 1990년부터 생산 인구가 줄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감소해 내수 시장 위축됐고, 이는 기업들의 생산 감소와 고용 감축으로 이어지며 다시 소비 위축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20여년간 장기불황을 겪었다. 이 기간 일본 백화점들이 줄폐업했고, 유일하게 편의점만 성장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인구가 집근처 편의점을 선호하면서다. 2012년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적극적인 경제 부양책으로 기업 경기부터 살아났고, 최근에는 기업들이 구인난을 호소할 정도로 일본의 일자리가 넘쳐나고 있다. 일본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유난히 눈에 띄던 이유다. 하지만 소비시장의 회복세는 여전히 미약하다. 인구 감소로 돈 쓸 사람들이 없는 탓이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한국의 출산율은 1.17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일본(1.46명)보다도 낮다.

국내 유통 기업들은 연초부터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가정의 균형)' 열풍이 뜨겁다. 신세계그룹이 올해부터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현대백화점은 남성 직원들의 육아휴직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면 3개월간 통상임금 전액을 보전해주고, 자녀 출산 첫 달에는 눈치 보지 않고 1개월간 휴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의무화는 롯데그룹이 지난해 먼저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의 워라밸 정책을 가장 눈여겨본 대목은 롯데보다 늘어난 남성 직원들의 육아휴직 기간이 아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남성 육아참여 프로그램'에는 유치원과 초등학생(1·2학년) 자녀를 둔 직원들은 1개월간 양육을 위해 근로시간도 2시간 단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기간엔 개인 상황에 따라 2시간 늦게 출근하거나 2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다. 자녀가 여러 명일 경우 추가 신청도 가능하도록 했다. 오롯히 자녀를 둔 직원에 초점을 맞춘 '저출산 지원책'이다.
현대백화점은 국내 유통기업 가운데 사내복지가 가장 뛰어난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해 시간 단위 휴가제인 '반반차(2시간) 휴가제'를 도입했고, 이미 '임신기간 단축근무제'와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 직원에게 도우미 비용 절반을 지원하는 '워킹맘 해피아워', 출산 휴가와 동시에 최대 2년까지 자동 휴직할 수 있는 '자동육아휴직제' 등도 시행 중이다. 직원들에게 가장 반응이 뜨거운 것은 임신 전기간에 걸쳐 2시간 단축근무와 임신기간 택시비(월 10만원) 지원이다.

이같은 지원책은 효과를 발휘했을까? 현대백화점 홍보팀 전원(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혼자 8명의 평균 자녀수는 1.625명.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저출산 종합대책보다 현대백화점 사내복지가 출산율에 더 기여한 셈이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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