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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요일에 읽는 지리사]일제의 첫 식민지에서 세계적 눈 축제의 땅이 된 '홋카이도'

최종수정 2018.01.13 08:00 기사입력 2018.01.13 08:00

(사진=https://travel.rakuten.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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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세계 3대 겨울축제 중 하나인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는 홋카이도는 예로부터 북해 빙궁(氷宮)이라 불릴 정도로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일본 내에서는 단일 지역 중 가장 큰 지역으로 일본 본토인 혼슈(本州) 다음으로 큰 섬이다. 전체 면적이 약 8만3424㎢로 남한의 80% 이상 면적에 인구는 530만 정도로 한산한 휴양지로 알려져있다.

옛날부터 일본에 속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일본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불과 150년 남짓이라 일본 전통의 특색있는 건물이나 문화재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중심도시 격인 하코다테(函館)부터 섬 대부분 지역이 메이지유신 이후에 개발이 시작돼 대부분 서양식 건물이 많다. 일본 본토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와 살기 이전에는 원주민인 아이누족들이 살고 있었다.

아이누족들은 원래 현재의 일본 도쿄일대를 의미하는 간토(關東)지역부터 홋카이도와 사할릴, 쿠릴열도와 캄차카반도 일대에 분포해 살던 원주민들로, '아이누'는 이들 말로 사람이란 뜻이다. 일본 본토에서는 예로부터 '에조(蝦夷)' 불렀으며, 8세기 이후 이들이 동북지역에서 잦은 반란을 일으키자 군대를 보내 토벌하기도 했다.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임명된 군 사령관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그대로 일본 무사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쇼군'의 어원이 됐다.

홋카이도와 쿠릴열도, 사할린, 캄차카 반도 일대에 살던 원주민, 아이누족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홋카이도와 쿠릴열도, 사할린, 캄차카 반도 일대에 살던 원주민, 아이누족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아이누족들은 15세기 일본의 전국시대가 개막된 이후 점차 북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해 에도 막부가 들어선 17세기에는 홋카이도 지역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이후 일본 본토와는 주로 교역을 했지만, 당시까지는 홋카이도의 거친 자연환경으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일본 조정이 딱히 필요로 하던 땅이 아니었기에 방치됐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시작되자 입장이 달라졌다. 영국과 미국 고문단들이 잇따라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속히 홋카이도와 사할린을 일본 영토로 편입하고, 자국민 이주와 개발을 서둘러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메이지 정부는 서둘러 1000명의 개척단을 파견하고 본격적인 지역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는 남하정책에 따라 한반도 일대와 함께 사할린, 쿠릴열도, 홋카이도 일대를 무주지선점 논리로 점령하고자 했고,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으려던 영국과 미국 등 다른 서양국가들은 일본정부를 충동질했다.

이에따라 홋카이도는 메이지 일본제국의 첫 해외식민지로 개발됐고, 여기서의 개발정책은 훗날 군사력으로 강제 점령하게 된 대만, 오키나와, 한반도 등 일제의 식민지 지역 통치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이제 막 개항을 했던 당시 메이지 정부는 강국 러시아에 밀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체결해 사할린을 러시아에 넘겨주고 만다. 중간에 놓인 쿠릴열도를 놓고 밀고당기기가 계속되다 일제 패망 직전에 소련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러시아의 영토로 남게됐다. 일본의 독도문제라고 불리는 '북방4도 반환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이런 복잡다단한 영토문제와 가난과 기아 속에 이뤄진 개척역사를 딛고 오늘날 홋카이도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올랐다. 눈축제와 맥주로 유명한 삿포로 뿐만 아니라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오타루도 인기 명소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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