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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비밀선거' 보장해주세요

최종수정 2018.01.12 11:05 기사입력 2018.01.12 11:05

모르는 사람이 보는데서 투표하라니…

지난 5월 대선 당시 투표를 거부당한 정명호 인천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오른쪽)가 4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관주기자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장미 대선'이 진행됐던 지난해 5월9일. 인천에 거주하는 중증장애인 정모씨(뇌병변장애 1급)는 투표를 하고자 활동보조인 1명과 함께 집 근처 투표소를 찾았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 투표사무원은 투표를 할 수 없다며 정씨의 기표소 입장을 제지했다. 공직선거법과 선관위 업무지침상 장애로 직접 기표가 불가능할 경우 2인의 동반 하에 투표를 진행하도록 규정, 투표참관인의 추가 입회 없이는 투표할 수 없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정씨는 '비밀선거' 원칙을 들며 일면식도 없는 참관인에게 자신이 누구에게 투표하는지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투표사무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정씨는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정씨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장애인은 선거철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데에도 차별을 받는다"며 "올해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6ㆍ13 지방선거가 15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장애인 투표권을 침해하는 현행 공직선거법과 선관위 업무지침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애인 단체 등은 해당 규정들이 사실상 장애인 유권자의 '비밀투표'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조짐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선관위 등에 따르면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 6항에는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맞춰 선관위는 업무지침을 통해 지명한 사람이 없거나, 1명인 경우에는 투표사무원을 선발해 참관 인원 2명을 맞추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가족이 없는 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 1명 이외에는 지명이 불가능해 투표를 하려면 투표사무원에게 투표 참관을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 보는 공무원에게 자신이 어떤 후보에게 표를 주는지 고스란히 노출시켜야 하는 셈이다.
이에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해당 규정이 올해로 제정 10년을 맞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등 4개 단체가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헌법소원 법률대리인 김재왕 변호사는 "처음보는 투표사무원에게 내가 누굴 뽑는지 알려야 하는 것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비밀투표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청구 취지를 설명했다.

관련 단체들은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관계자는 "이번에 개정되지 않는다면 지방선거는 물론 2020년 총선까지 계속 장애인 투표권이 침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면서 "선관위와의 면담 등을 추진하고 관련 법령과 지침 개정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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