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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犬犬犬…공존과 동행의 연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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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안 좋은 일에 우리를 갖다 붙이지 마세요

영화 '마음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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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헌 속 악귀 쫓는 길상의 존재 '개'...'마음이' 변함없이 주인 곁에서
'율리시스'·'에이트 빌로우' 등 인간과 개의 끈끈한 우정 묘사
반려가정 늘면서 어울림 강조...'황해'·'더 킹' 조폭물서도 단골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인간의 오랜 친구, 개. 충직하고 용맹하다. 친근하기까지 해 지구상 어떤 동물보다 인간과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가족. 사냥에 쓰기 위해 길러지다가 어느덧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개는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신성하면서도 친숙하고, 용감하면서도 귀엽다. 영화는 그 모양에 주목하고 다양한 의미를 담았다. 공존과 동행의 연장선이다.
영화 '사도'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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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십이지신 중 악귀를 쫓고 공간을 지키는 길상의 존재다. 그래서 세화(歲畵ㆍ임금이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신하에게 내려 주던 그림)와 부적에 자주 등장한다. 이준익 감독(59)의 '사도(2015년)'에서 사도세자(유아인ㆍ엄지성)는 청나라 황제로부터 선물로 강아지를 받는다. 아프간하운드로, 이름은 '몽.'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견도(犬圖)'에서 착안한 영화적 해석이다. 사도세자는 몽을 끔찍이 아낀다. 대리청정에서 아버지 영조(송강호)에게 구박을 받고도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네가 청나라에서는 개들의 왕일지 몰라도 여기는 조선이야. 너 자꾸 짖으면 똥개한테 장가보낸다." 사도세자가 아버지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 몽은 사도세자가 서인으로 강등돼 뒤주에 갇힌 슬픔을 나타나는데도 한 몫 한다. 한밤중 뒤주를 찾아 주변을 맴돌며 구슬프게 운다. "어젯밤에는 왜 안 짖었니? 너도 주상(主上)이 무서우냐?"

영화 '마음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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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주인 곁을 지키는 습성은 '마음이(2006년)'에도 나온다. 어른들에게 버림을 받는 찬이(유승호)ㆍ소이(김향기) 오누이. 찬이가 훔쳐온 래브라도 리트리버 새끼 마음이 덕에 겨우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마음이의 실수로 소이가 죽으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찬이는 엄마가 있는 부산으로 떠난다. 홀로 버려진 마음이는 기찻길을 따라 찬이의 뒤를 쫓는다. 주인을 향한 그리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여정. 찬이가 앵벌이하는 버스 신에서 다른 이유가 나타난다. 하차하는 승객들을 바라보던 마음이가 소이와 같은 가방을 메고 걷는 소녀를 보고 컹컹 짖는다. 공허한 짖음이지만, 마음이의 시선을 반영한 샷이 더해져 애처로움이 극대화된다.

영화 '율리리스' 스틸 컷

영화 '율리리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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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인간의 성격을 파악할 만큼 영리하다. 사람이나 다른 개가 내는 감정적 소리에 자기감정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리오 카메리니 감독은 '율리시스(1954년)'에서 이런 특성을 부각한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커크 더글라스)가 키우던 사냥개 아르고스를 등장시킨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10년 만에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온다. 거지꼴을 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아내 페넬로페(실바나 만가노)조차 눈치를 채지 못한다. 늙어서 지푸라기 위에 늘어져 있던 아르고스만은 달랐다. 주인의 체취를 기억하고 흐느끼듯 운다. "그래, 이 녀석아. 우리 둘 다 많이 변했구나. 하루 종일 언덕에서 사냥했던 거 기억나지? 언제나 네가 1등이었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사냥했어." 그는 자신의 처지를 아르고스에게 투영하며 독백을 이어간다. "이제는 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늙었구나. 하지만 날 알아봤잖아. 그래도 집에서 누가 반겨주긴 하는 구나."

영화 '에이트 빌로우' 스틸 컷

영화 '에이트 빌로우'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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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의 끈끈한 우정을 강조한 작품으로 프랭크 마샬 감독(72)의 '에이트 빌로우(2006년)'도 빼놓을 수 없다. 썰매개 여덟 마리 덕에 죽을 고비를 넘긴 남극의 탐사대원 제리 셰퍼드(폴 워커). 동상을 치료하기 위해 개들을 남겨두고 떠난다. 곧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은 25년 만에 불어 닥친 폭풍으로 지켜지지 못한다. 개들은 사슬을 끊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선두에는 맥스가 있다. 팀에서 가장 의기소침하고 순종적인 개. 하지만 역경을 맞자 강인함을 드러내며 우두머리가 된다. 위기를 모면하며 잠재력을 발견하는 셰퍼드와 많이 닮았다. 에이트 빌로우는 인간의 의지로 개들을 구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들의 의지가 죄책감에 시달리던 인간을 구원하는 이야기다. 인간의 극지 탐험을 가능하게 한 썰매개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다.

영화 '황해' 스틸 컷

영화 '황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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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사람에게 길들여져도 야생성이 있다. 사나운 개는 맹수와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신화에는 괴물 개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트로스가 대표적이다. 머리가 둘 달린 개로, 에리테이아 섬에서 거인 목동 에우리티온과 함께 게리네우스의 붉은 황소 떼를 지킨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케르베로스도 머리가 셋 달린 괴물 개다. 하데스의 지하세계 입구에서 영혼이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오리온의 사냥개 라이라프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뜀박질로 잘 알려졌다. 가축과 사람을 잡아먹은 여우를 잡은 공로로 하늘의 별자리가 된다. 영화에서 야생성은 사냥견, 경비견, 투견, 군용견 등을 통해 나타난다. 한국영화에서는 조폭물에 투견이 자주 등장한다. 하정우(40) 주연의 '황해(2010년)', 조인성(37) 주연의 '더 킹(2016년)', 김혜수(48)ㆍ이선균(43) 주연의 '미옥(2017년)' 등이다.

영화 '더 킹' 스틸 컷

영화 '더 킹'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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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에서는 최두일(류준열)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들개파 김흥수(김의성)의 오른팔. 납치한 사람들의 몸에 개의 식욕을 자극하는 약을 뿌린다. 다른 조폭들이 커피를 마시며 잔인한 광경을 지켜볼 때 최두열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른 곳을 본다. 들개 같다. 어둠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며 세력을 확장한다. 그러나 끝내 김흥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친구 박태수(조인성)를 구하고 죽는다. 식욕을 자극하는 약에 흠뻑 젖어 개들의 먹이가 된다. 참담한 죽음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들개가 아니라 투견에 불과했던 셈이다.

영화 '패터슨' 스틸 컷

영화 '패터슨'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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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많이 조명되는 개의 성격은 어울림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아진 사회상이 다양한 장르를 통해 나타난다. '베토벤(1992년)', '강아지와 나의 10가지 약속(2008년)', '하치 이야기(2009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년)',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2015년)'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짐 자무시 감독(65)의 '패터슨'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활용으로 눈길을 끌었다. 잉글리시 불독인 마빈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삶에 조그만 변화를 가져온다.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와 함께 있으면 얌전하지만, 그녀가 떠나거나 잠이 들면 본색을 드러낸다. 특유 콧소리와 험상궂은 표정으로 패터슨을 놀리는가 하면, 산책을 하면서 패터슨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악행은 점점 발전해 패터슨이 시를 써놓은 공책을 찢어놓기에 이른다. 패터슨에게 질투를 느끼는 영락없는 수컷. 그런데 연기한 개는 암컷이었다. 촬영할 때마다 자무시 감독의 탄성을 자아냈다. "놀라운 연기로 수컷의 능청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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