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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빅체인지]가상화폐, 합법과 불법 사이

최종수정 2018.01.11 14:05 기사입력 2018.01.11 14:00

"대박났다" 시장은 뜨거운데 솔로몬이 없다

 

#.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지하 상가 '고투몰'. 이곳에서는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옷을 사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현금이나 신용카드가 없어도 쇼핑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여기선 가상화폐는 엄연히 합법이다. 가상화폐(암호화폐)는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인증 글을 공유하며 부러워하다가도 한발 늦었다는 열패감에 근로 의욕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내가 그때 비트코인을 샀다면 지금 얼마일까'를 알려주는 사이트까지 등장해 안타까움을 부추긴다. 급격한 등락에 따른 불안감에도 '코린이'(코인시장+어린이)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다.

 

#.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직접 조사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가상화폐를 보유했는지를 들여다보고 거래에 사용되는 은행 가상계좌 개설과 운영에서 불법이 드러나면 폐쇄하겠다고 했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지난해말부터 가상화폐 거래와 관련한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중단한 바 있다. 또 국내 3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원은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마진거래로 회원들에게 도박 기회를 제공했다는 혐의다. 거래소에서 제공한 서비스를 이용한 회원들까지 처벌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렸다.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상화폐가 우리나라에서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투자와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거래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치며 규제할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가상화폐가 미래의 화폐인가, 단순한 상품인가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대박을 꿈꾸는 이들은 가상화폐 광풍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급격하게 출렁이는 가격에 사라지고 생겨나는 가상화폐의 가치는 도박을 방불케 한다. 가상화폐 자체에 대한 법제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채 열기만 과열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다.

 

◆투자의 기회인가 = 가상화폐의 개념은 비트코인이 개발된 2009년 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가격이 급등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6년 40만원 선이었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지난해 9월 500만원을 넘어서 10배 이상의 상승하더니 이후 더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려 최근에는 2000만원을 웃돌고 있다. 가격이 이렇다보니 거액을 번 사람들의 얘기가 일파만파 퍼졌고 늦게나마 한몫 잡으려고 뛰어든 투자자들로 시장은 더 커지고 있다.


가상화폐 정보 업체인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따르면 올해 초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 규모는 7700억 달러에 달했다. 여기에는 한국에서의 투자 열기가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코인마켓캡이 한국의 가상화폐 가격이 국제 시세를 웃돈다는 이유로 8일(현지시간) 국내 거래소 3곳을 가격 산정에서 제외하자 가격이 급락하며 하루 만에 시가총액 1000억 달러가 증발했다. 가상화폐 투자는 먼 곳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주변에서 이뤄진다. 구인구직 업체인 '사람인'이 지난해 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1.3%가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불법의 영역인가 = 이미 시장은 커지고 투자자들은 급격히 늘고 있지만 제도적 보완에 대한 논의는 이제야 시작됐다.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투기판'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정부는 뒤늦게 규제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현행법상 가상화폐는 금융거래로 인정되지 않아 관련 법령은 없지만 유사수신행위규제법과 특정금융정보법 등을 근거로 거래소의 불법행위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며 "규제 체제가 갖춰지지 않았다. 다른 나라도 그렇다"며 "(가상화폐가) 출현한 것은 여러해 됐지만, 투기 광풍이 불고 많은 사람이 참여한 건 작년 7월"이라고 했다.

 

정부가 꺼낸 규제안은 거래되는 자산으로서의 가상화폐를 겨누고 있다. 규제의 칼끝이 가상화폐 자체가 아닌 거래소를 향하고 있는 이유다. 가상화폐가 화폐인가, 아니면 상품인가를 묻는 질문에 정부는 화폐는 아니라고 답한 셈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지난해 말 "가상통화는 법정 화폐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금융 전문가들도 가상화폐를 화폐로 볼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시장만 봐도 화폐라고 보기 위한 가치 교환 측면에서 안정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초점은 커질대로 커졌지만 여전히 합법과 불법 사이에 놓인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남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시장은 앞으로도 존재할텐데 거래소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고 기존의 증권 거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제도를 보완하고 규제 장치를 빨리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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