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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초등학생 디지털 교과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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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소설가·前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이상문 소설가·前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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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팅'이란 말이 10여 년 전부터 나돌았다. 이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어서 3년여 전부터 '관태기'란 말이 나돌고 있다. 기왕에 만나온 사람들이건 새로운 사람들이건, 싫증이 나고 피로감을 느껴 만나기기 싫어졌다는 뜻인데, '관계'와 '권태기'를 합성해 만든 말이다. 한마디로 인간관계를 해나가는 노력이 지겨워져서 모임 자체를 피한다는 뜻이니, 앞말에 비해 뒷말의 뜻이 더욱 단호하고 과격하기까지 하다.

이 현상은 20∼40대 나이대에 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에 송년회나 신년회가 1년 전에 비해 40% 쯤 줄었고,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줄어왔다는 통계를 볼 수 있다. 물론 동아리ㆍ동창회 모임도 그에 따라 줄었다. 심지어는 젊은 부부가 아이를 얻었을 때 하는 돌잔치나 집을 샀을 때 하는 집들이도, 실제로 하지 않고 대신 소셜 미디어로 사진을 찍어 내보내고 만다.
더듬어 보면, 그 나이대 사람들이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이 "세 명만 낳자"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뀐 때가 1970년대다. 그리고 1980년대는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로 다시 바뀌었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왕자병'을 심어주던 세대다. 이들이 청ㆍ장년이 되어 이 나라에서 가장 힘쓰는 나이대가 됐음이다.

그들은 이른바 '디지털 세대'다. 누구와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 기기 자체를 남과 함께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늘 혼자서 사용해야만 하는 기기를 가장 잘 이용하는 세대라는 뜻이다. 인터넷은 스스로를 고립시켜 1인의 성을 갖게 해주는 기기다. 그들은 제 성 속에 사는 데 아주 익숙해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가 싫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겨우 '밥벌이'를 위한 때를 빼면 그렇게 사는 것이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웃사람은 '먼 그대'고 동료는 '위험 인물'이 된다. 이웃의 현관문 안에 들어서기가 음식 배달원보다 어려운 사람들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서로 다른 생각을 교류하기 위해서다. 다른 생각들의 만남으로 '창의'가 이루어진다. '인성'이 닦인다. '창의'와 '인성'은 곧 발전의 시작이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는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소통한다. 조금만 생각이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벌떼처럼 덤빈다. 폭력성이 극대화 된다. 그렇게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끼리 모이다보면, 그 생각이 전체 의견이고 맞는 의견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국민의 뜻'이 따로 있는데 전체 의견에 맞는 의견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까. 20∼40대 나이대 사람들은 그렇다고 하자. 그럼 10대 앞뒤의 소년들과 유아들의 실태는 어떤가. 젖만 떨어지면 휴대전화를 장난감으로 받아서 울음을 그쳤던 이들은,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눈앞에 그들보다 열 배는 더한 모습이 그려진다.
프랑스의 마크롱 정부는 왜 초등학교에 입학해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제도를 2018년 9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는가.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왜 가짜 뉴스나 테러 조장 게시물을 방치하는 소셜 미디어 기업에 최고 벌금 5000만 유로를 물리는 법안을 1일부터 시행하는가. 이때에 한국의 교육부는 뭘 믿고 올해부터 초등학교 3∼4년생의 사회ㆍ과학ㆍ영어 수업 때 디지털 교과서를 쓰도록 한 것인가. 끝내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거리를 더욱 벌려 놓고 말텐데 말이다. 미국도 9년간 돈만 쓰고 있음이다.

이상문 소설가ㆍ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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