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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실존인물 박처원 "빨갱이 수천 명 잡아넣고 골로 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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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경찰의 대부로 악명을 떨친 박처원은 위로는 친일경찰 노덕술로부터 고문기술을 전수받고, 밑으로는 부하였던 이근안에게 고문기술 전수는 물론 수배 중 도피자금을 직접 후원한 중간자로서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공안경찰의 대부로 악명을 떨친 박처원은 위로는 친일경찰 노덕술로부터 고문기술을 전수받고, 밑으로는 부하였던 이근안에게 고문기술 전수는 물론 수배 중 도피자금을 직접 후원한 중간자로서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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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내 손으로 (빨갱이) 수천 명을 잡아넣고 골로 가게 만들었지”
열일곱 나이, 맨손으로 이북서 남조선에 내려와 경찰에 자원, 오직 ‘빨갱이’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순경으로 시작해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무관’까지 오른 유일한 전설의 인물, 공안경찰의 대부 박처원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에서 그를 모티브로 한 박 처장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 김윤석의 열연으로 엄혹했던 1987년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을 이끌었던 그의 행적이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 수많은 대공 수사를 통해 승승장구 했던,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혐의로 10년 뒤 법정에 서고도 징역 1년 6월에 그쳤던,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사진 = 영화 '1987' 스틸 컷

사진 = 영화 '1987'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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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한 소년의 집안이 산산조각 난 배경은?

해방 후 평안남도 용강의 대지주 집안에서 자란 박처원은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박처원을 상관으로 모셨던 한 고문 경관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박처원 전 치안감이 유독 대공 수사에만 몰두했던 이유로 ‘그의 가족이 그가 보는 앞에서 전부 공산당에게 몰살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1987’에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을 고문하며 자신의 가족사를 비통하게 털어놓던 박 처장의 이야기는 실제 박처원의 이야기였던 것. 당시 공산당은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계층의 농지를 몰수하고, 지주일가를 착취계급으로 규정, 잔혹하게 처형하며 국가의 기틀을 다잡아 나갔다.

이처럼 가족이 모두 공산당 손에 죽은 박처원은 평양에서 반소 운동(반소련, 반공산당 운동)에 가담했다가 혈혈단신으로 남한으로 온 즉시 종로경찰서로 향해 경찰에 자원한다.

‘뽀찌’먹는 좋은 자리 마다하고 대공 수사에만 몰두

눈앞에서 가족을 몰살당한 소년의 증오는 공산당으로, 월남 후엔 빨갱이로 옮겨 붙어 활활 타올라 그를 더욱 대공 수사에 매달리게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술자리에서 김일성 이름만 내뱉어도 즉시 구속되는, 이른바 ‘막걸리 반공법’에 걸려 들어온 취객 셋만 구속해도 경찰이 특진 하던 시절, 박처원은 탁월한 대공 업무로 남대문 서장 등 ‘좋은 자리’를 마다한 채 제대로 된 대공 수사 매진했다.

특히 그는 일방적으로 시민을 구속하는 대신 국가보안법 7조(찬양 고무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의 사상과 이념을 철저히 검증해 구속할 것을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치밀하게 짜여진 사건들과 그를 뒷받침하는 구속자들의 완벽에 가까운 조서들은 모두 그의 탁월한 기획과 탁발한 고문 실력에서 탄생했다.

1996년 대법원 재판 당시 출석하는 박처원 전 치안감의 모습. 사진 =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1996년 대법원 재판 당시 출석하는 박처원 전 치안감의 모습. 사진 =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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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전수받은 그의 고문기술

1947년 경찰에 투신한 박처원이 막내였을 때, 그가 상관으로 모신 인물은 친일경찰로 유명했던 노덕술이었다. 1946년 수도경찰서장 장택상은 노덕술의 친일행위를 눈감아주고 그를 수사과장에 기용했다. 경찰 내 반이승만 세력을 숙청함과 동시에 좌익분자 검거에 나선 노덕술 사단에 박처원이 막내로 들어가게 된 것.

그는 과거 수백 명의 독립투사의 입에서 변절과 동료의 은거지를 끄집어낸 노덕술의 고문기술을 그대로 흡수하는 한편, 위험한 특수임무를 자청하며 경찰 내 입지를 다져나갔다.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도 남영동 주인은 그대로’라는 영화 속 대사는 사실이었다. 1975년 총경, 1982년 경무관, 80년대 후반 치안본부 5차장으로 승승장구한 박처원은 자신의 상사였던 노덕술이 그러했듯 자기 밑의 탁월한 대공 수사전문가들을 모아 ‘박처원 사단’을 형성, 그의 손에서 학림사건, 부림사건, 금강희 사건, 아람회 사건 등 굵직굵직한 대공 사건이 줄줄이 엮여 나왔다.

정권의 신임은 두터웠고, 박처원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요원들을 각별히 총애했고, 그중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이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전 경감이다.

세상이 바뀌어 이들 모두가 법의 심판대 앞에 설 때도 박처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1988년 잇따른 공소제기로 부하 이근안이 공개 수배되자 기업가로부터 받아낸 돈으로 도피자금을 지원하며 그의 구속을 미루는 데 일조했고, 역시 부하직원 김수현 전 경감이 김근태 고문 사건으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당하자 구상금 8천만원을 지원하며 아랫사람들의 든든한 뒷배 노릇을 했다.

이후 1996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을 때도 그는 의연히 대응했고, 자신이 자행한 고문 행위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당뇨 증상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고 나와 천수를 누리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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