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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3]마음을 뜨겁게 하는 우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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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후퇴, 흥남 철수, 국제시장, 1953년의 <굳세어라 금순아> 그리고 현인. 그가 노래하는 장면을 본다. 1987년 영상. 대학 새내기였던 수십 년 전인데, 그 모습이 아득한 옛날 같다. 이상하다. 초현실적인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002년에 세상을 떠난 현인의 노래에 붙이고 싶은 형용사는 ‘애절하다’이다. 음악과 언어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한국 가수가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데, 언어가 낯설다. 외국어 같다. 젊은 현인이 나에게 다가온다. 부드럽고 얇은 고음으로 간질이다가, 무겁게 내려앉아 부피가 커지는 저음으로 나를 포박한다. ‘하이 바리톤’으로 불리기도 하는 현인의 음성. 휴지를 단속하여 이루어내는 특유의 바이브레이션. 음이 끊길 때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린다.
가수는 살아서 노래를 한다. 가수는 죽지 않았다. “리라꽃 같은” 미소를 피우며 노래한다. “베사메 베사메 무쵸”(<메사메 무쵸>)가 들려온다. 유호가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럭키 서울>을 부를 때 현인은 진지하다.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 / 너도 나도 부르자 사랑의 노래 /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명랑과 건설을 찬양하는 시대의 이념이 현인 때문에 발랄한 행진곡으로 바뀐다. 노래가 시간의 축적에 의해 시대의 정서를 응축한 텍스트로 바뀐다. 그는 생생(生生)하다. 감정이 뭉개질 것 같다. 눈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이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들. 감상(感傷)이라고 해도 좋다. 현인의 노래로 불리는 박인환의 작품을 센티멘탈하다고 비난해도 좋다. 나는 기꺼이 감상주의자가 될 것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세월이 가면> 전문
사랑은 허무한 것이라네. 사랑은 환상이라네. 사랑은 거짓이라네. 사랑은 고통이라네. 사랑은 파괴되어야 하네. 사랑 없는 곳으로 가서 “신라의 밤 노래”(<신라의 달밤>)나 부르겠네. “무릎 꿇고 하늘에다 두 손 비는 인디아 처녀”(<인도의 향불>)의 눈동자에 어리는 만월. 그 쓸쓸한 밤의 구음(口音)을 오랫동안 품고 있겠네. <꿈속의 사랑>이 있었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할 죄이라서 / 소리 없이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사랑이 꿈이라면, 사랑이 “다시 못 올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않을텐데, 사랑은 꿈속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사랑을 버리고 나는 노래 속으로 영원히 들어가겠네.
시는 노래가 아니다. 시는 음악이 아니다. 가사는 시가 아니다. 현인의 목소리 역시 시는 아니다. 현인이 ‘부르는’ <꿈속의 사랑>이 시이다. 시는 노래 앞에서 무력하다. 시는 패배한다. 그러나 시는 현인을 가요에서 끄집어낸다. 가수 현인이 시인이 되는 순간. 그가 노래를 부를 때이다. 1986년의 현인이 가요무대에서 <고향만리>를 부르고 있다. 그는 살아 있다. 그는 30년을 2분 30여 초로 압축한다. 그 세월을 시로 바꾼다. 나는 그 시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가수의 목소리를 흡수하고 감정의 파동을 경험한다. 시는 노래를 발견한다. 시는 그를 잊지 않는다. 시는 그를 사랑한다.

옆집의 창과 나의 창은 마주 보고 있다
방범 창살과 두 겹의 창문 그리고
무늬가 있는 커튼이 걸리고
우리는 이웃이 되었다

(……)

당신이 믿고 있는 그
다단의 가림막과 내가 믿는
나의 보호막 사이에서
어떤 시차가 발생한다
내가 열면 당신이 닫고 내가 닫으면
당신이 열곤 하는 우리는 상호주의자

깊은 밤 이따금 창문이 흔들거리면
당신과 나는 잠깐씩 고개를 돌려
같은 방향으로 귀를 기울일 것이다
창문에 손바닥을 대고 숨을 죽여 보거나
가만히 벽지의 무늬를 세어 보는 정적의 틈에서
우리의 경계는 골목처럼 내밀해지고
다정해질 것이다

어둠 속 고요한 창문들이
먼 곳의 불빛을 빨아들이고 있다
꺼졌다가 다시 불 켜지는 창도 있다
- 최원, <이웃의 중력> 부분

현인의 노래가 끝났다. 감정 밖으로 빠져나오면 현실이 보인다. 싸우는 소리, 식기 부딪히는 소리, 사랑할 때의 숨소리가 옆집에서 들려온다. 파고드는 “이웃의 중력” 같은 소음. 인생이라는 짐을 잠시 내려놓고 과거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인생과 현실은 날름거리는 불꽃 속에……
현인의 노래를 흔히 트롯이라고 부른다. 낮춰 부르는 말로 ‘뽕짝’도 있다.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락 메탈(rock metal) 음악을 듣기 위해 일산 라페스타의 바를 가끔 찾아간다. 그곳에서 금지된 장르는 클래식과 뽕짝. 주인의 선택을 나는 존중한다. 뽕짝은 그곳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니까. 아줌마 아저씨들이 술 취해 껴안고 돌고 돌다가 함께 관광버스 춤을 추더란다. 당연히 금지할 수밖에…… 버스에서 커튼치고 뽕짝 쾅쾅 틀어놓고 춤추는 사람들에게 어울릴 만한 노래, 이박사. 집에서 그의 음악을 크게 볼륨 키우고 몸을 흔든다. 숨이 찬다. 이박사의 앨범 <<스페이스 판타지(Space Fantasy)>>의 세 번째 트랙 메들리 곡 <뽕짝-테크노 버전>의 길이는 22분 정도이다.
이 잡종 음악을 어떻게 규정할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괴물이 탄생했다고 할까. 테크노 장르가 어떤 음악과도 섞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할까. 뽕짝의 박자와 비트를 증가시키면 모두가 아는 고속도로 휴게소 음악이 나오니까, 그렇고 그런 상스러운 노래로 폄하할까. 없던 것의 탄생. 이것을 우리는 시적(詩的)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을 창조해낸 이박사. 그것에 ‘새롭다’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겨우 5분이 지났는데, 머리를 쉬지 않고 흔들었더니 어질어질하다. 이박사의 고음 추임새가 이어진다. 춤을 멈추자. 심호흡을 하자. 나는 이박사의 음악을 의자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감상한다. 이디엠(Electronic Dance Music)이다. 과장된 꺾기가 연속된다. 넘어간다, 넘어간다, 이히, 이히, 이힛, 좋다아 좋아아, 헛 헛 헛!
이박사는 스스로 ‘삼류’라고, 질 낮다고 말한다.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센치한’ 삼류가 될 수 없다. 그의 음악은 청자를 속이지 않는다. 가리고 감추는 자가 아니다. 결코 표절한 적이 없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우연하게도, 음악이 똑같을 뿐이라고 말하는 자. 훔친 것일 수 있으나 훔친 적이 없단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 물건이 탁자 위에 놓여 있길래, 내 것인 줄 알고 잘 사용했는데, 지금 와서 그것이 남의 것으로 밝혀졌으니, 정말로 죄송하다, 그러나, 결단코 그것을 훔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어떤 가수. ‘원숭이 나무에 올라가 꼬리를 휘두르며 앉아 있네, 북쪽의 술집 아가씨들은 짧은 치마를 너무 좋아해, 얼씨구 절씨구, 디스코를 잘 추네, 몽키 몽키 매직’.
그의 음악은 하이브리드(hybrid)의 모범 사례이다. 10분, 절반이 지나고 있다. 맥박과 혈압이 치솟는다. 가치를 전복하고, 형식을 파괴한다. 새로움을 향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한다. 극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의 현현(顯現). 이박사의 하드 코어 테크노 댄스 음악이 귀를 자극한다. <오방>이다. “아싸, 오뎅, 아싸, 오방” 후렴구 뒤로, 이박사의 기성(奇聲), 환청처럼 퍼지는 ‘오방 오방 오방’. 이박사는 불온(不穩)하다.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염산처럼 자극적이다. 이박사의 음악은 새로움이 가득한 전위 음악이다. 그의 음악은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하다.

전위적(前衛的)인 문화가 불온하다고 할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재즈음악, 비트족, 그리고 60년대의 무수한 앤티예술들이다. 우리들은 재즈음악이 소련에 도입된 초기에 얼마나 불온시 당했던가를 알고 있고, (……) 그리고 이런 재즈의 전위적 불온성이 새로운 음악의 꿈의 추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예는 재즈에만 한한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베토벤이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세잔느가 그랬고, 고호가 그랬고, 키에르케고르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아이젠하워가 해석하는 샤르트르가 그랬고, 에디슨이 그랬다.
- 김수영, <‘불온’성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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