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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시장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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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한국 자본시장에서 명망이 높았던 한 인물이 스스로 퇴진을 선언했다. 그의 영향력과 이미지는 역대 어떤 인물보다 강하고 선명했다. 오랫동안 민간영역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에 정책을 제안했으며 최근까지도 꽤 많은 것들을 실현했다.

그의 퇴진 선언은 단호했으나 논란을 낳았다. "나는 현 정권과 결이 다르다." 평소 그다운 모습이었으나 동시에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당황케 했다. 금융권 협회장에 대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퇴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에 이어 출범한 지 6개월 남짓 지난 정부에 사실상 보이콧(boycott)을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 뒤를 이었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현 정부의 출범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내비쳤다. 외교상 기피인물을 의미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 (persona non grata)'에 빗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점을 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퇴진 선언으로 그의 두 달 후 거취는 명확해졌다. 그러나 선언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활발했던 협회장으로서 행보를 감안하면 차기선거 불출마의 변(辨)이라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주의자인 나는 시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현 정부는 시장이 위험하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큰 정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나와 결이 다르다"고 언급한 대목은 낡은 프레임을 떠올리게 했다.

낡은 프레임은 오류를 낳는다. '기본 소득 도입'을 큰 정부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는 프레임으로만 이해하면, 기본 소득을 지지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잇는 경제학계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과 실리콘밸리 기업인을 큰 정부론자로 분류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장이냐, 정부냐"는 하이에크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 상징되는 이 논쟁역시 20세기와 21세기에 수차례 위기를 거치며 완화되거나 상당 부분 허물어졌다. 시대착오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낡은 프레임을 종종 목도한다. 미시보다는 거시를, 이론보다는 정책을 언급할 때 나타난다. 그들은 주로 시장과 정부, 경영과 노동, 효율과 공정, 성장과 분배 등을 논쟁의 재료로 활용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구체적 해법이 절실한 시기다. 그 해법을 찾아가는 여정에 그들의 지지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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