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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벤치에서 돌아온 NFL선수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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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지난주 미국 뉴욕의 신문들은 스포츠 뉴스로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다. TV 채널을 틀어도 메인 뉴스에 스포츠 소식이 빠지지 않았다. 미국프로풋볼(NFL) 뉴욕 자이언츠의 쿼터백 일라이 매닝(36) 선수 때문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자이언츠의 벤 맥아두 감독이 부진한 팀 실적을 운운하며 매닝 선수를 벤치에 앉히기로 결정했다. 이후 매닝은 정규 시즌 연속 선발 출전 기록이 210경기에서 중단됐다. 이는 NFL 사상 브렛 파브레(297경기) 다음으로 긴 기록이다.
맥아두 감독이 매닝을 벤치에 앉힐 당시 자이언츠는 이번 시즌 2승 9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플레이오프 도전이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맥아두 감독의 결정은 스포츠 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고 말았다. 일간 뉴욕타임스도 '자이언츠가 매닝에 대한 결정으로 수치심을 샀다'고 비난했다. 자이언츠가 굴욕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데 이어 금세기 최고 선수 매닝에게 많은 부분을 책임지게 만들었다며 잘못된 결정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물론 매닝의 성적이 예전 같진 않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이번 결정으로 매닝이 그만두지 않았다는 점에 자이언츠가 감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팬들도 반발했다. 자이언츠의 부진한 실적에 비난을 일삼던 시민들조차 매닝의 벤치행 소식에는 반발했다. 효율성만 따지려는 자본주의적 시각 때문에 결국 '전설'을 벤치에 앉혔다는 것이다.
매닝을 벤치에 앉히기로 결정한 맥아두 감독과 제리 리즈 단장은 함께 경질됐다. 자이언츠는 같은 날 매닝을 다시 선발 쿼터백으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매닝 없이 치렀던 경기에서 또 졌다는 점도 그의 복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매닝을 벤치에 앉혔던 결정이 감독과 단장 경질의 가장 큰 이유다.

자이언츠는 여전히 꼴찌에 가까운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팬들의 사기는 높다.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미국, 그것도 뉴요커들이 생각과 달리 자본주의적 효율성만 따지는 건 아닌 듯하다. 이는 '전설'에 대한 예우를 중시하는 미국의 특이한 문화와도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프닝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스포츠, 더 나아가 한국에서 베테랑을 대우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봤다.

시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들도 결국 세월의 무게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지금은 스포츠 슈퍼스타들이 100억 연봉을 받고 해외로 진출하는 시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밀려난 몇몇 베테랑은 은퇴와 현역 연장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뇌한다.

물론 구단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구단으로서는 베테랑 우대라는 의미와 활용가치가 떨어진 선수에 대한 냉정한 작별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정부 기관의 연말 인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의 분위기는 '적폐청산', '세대교체'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세대교체를 위한 세대교체를 하다 보니 능력 있는 베테랑들이 내쳐지는 건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세대교체나 인적 쇄신은 단순히 얼굴만 바꾸거나 연령대만 낮춘다고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정답 없는 논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베테랑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연륜을 갖춘 베테랑이라면 기꺼이 따르겠다는 후배들도 얼마든 있다.

매닝의 아버지 아치 매닝(1970~80년대 뉴올리언스의 유명 쿼터백)은 아들의 벤치행이 결정되자 "풋볼은 삶이랑 똑같다"며 "전쟁도, 암도 아닌 그냥 풋볼일 뿐"이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문답 같은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가끔 이런 베테랑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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