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94회 정기연주회…해외 작곡가와 콜라보 무대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제94회 정기연주회. 무대에는 가야금과 거문고, 대금, 소금, 피리, 해금, 아쟁, 양금, 타악기 등이 정갈하게 자리 잡았다. 낯선 울림이 공기를 갈랐다. 청아한 현악이 객석을 사로잡았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과 국내외 작곡가 여덟 명이 함께한 3년에 걸친 여정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창작악단은 특별한 의미가 담긴 레퍼토리로 관객을 맞았다. 지난 10월25~29일 열린 미국 현대음악 축제인 '환태평양음악제(Pacific Rim Music Festival)'에 참가곡들로 75분짜리 공연을 마련했다. 당시 창작악단 단원들은 미국 작곡가와 한국 작곡가 이건용의 작품 등 국악관현악 및 실내악 작품 여섯 곡을 개ㆍ폐막공연에서 선보였다. 해외 작곡가가 참여한 국악 공연이라는 점에서 현지 음악인들의 호기심과 감동, 여운은 더욱 컸다.
국립국악원은 2014년 해외 작곡가들이 국악관현악곡을 작곡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여기에 참여한 미국 현대음악 작곡자들은 2015~2016년 진행된 연수에서 국악체험 및 작곡수업, 국악공연을 관람하는 커리큘럼을 거쳤다. 조지 E 루이스(컬럼비아대 교수), 시-후이 첸(라이스대 교수), 에드먼드 캠피온(버클리대 교수), 신디 콕스(버클리대 교수), 데이비드 에반 존스(산타크루즈대 교수), 이건용(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작곡가들은 연수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연구결과를 각자의 음악적 바탕에 접목하는 예술적 실험에 도전했다.
박 악장은 "미국 작곡가들이 국악을 경험하면서 문화적인 충격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얻은 음악적 가치와 감동이 신곡들에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짧게는 1분56초, 길게는 14분40초에 이르는 곡은 하나하나가 독특한 기교와 개성을 자랑한다. 그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얻었다"면서 "국악의 어법이냐 서양음악의 어법이냐 등 개념적 논의보다는 음악이 주는 감동을 교류하고 확장하는 기회였다"고 했다.
공연 두 번째 곡으로는 대만 출신 시-후이 첸 교수가 작곡한 '만 송의 꽃, 낙화(Ten Thousand Blooms, Falling Petals)'가 연주됐다. 루이스 교수와 함께 방한한 그는 "국악의 농현(국악 현악기 연주에서 장식음을 내는 기법) 등은 서양의 비브라토와 다르면서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을 낸다"면서 "악기 문화와 표현법이 다른 나라간의 교류는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과 같았다"고 평했다. 그는 서양의 레이어링 기법에 동양적인 소재와 표현이 대위를 이루는 통합적인 시도로 추상적이면서 자유롭게 흐르는 선율을 완성했다.
이날 공연에는 두 작곡가의 곡 외에 이건용의 '청개구리(Green Frog)', '들리는 수 (Audible Numbers)', '나선 II(Naseon II)', '조류(Currents)', '초코의 기나긴 모험(The Long Adventure of Choco)', '추락하는 꿈(Dreams of Falling)'이 소개됐다.
박 악장은 "음악은 나라나 계층, 문화적 배경에 따라 관객 각자의 취향대로 들을 수 있는 매개체"라면서 "오늘의 성과는 국악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늘려나가기 위한 시도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앞으로도 국악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실험해 그 결실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공유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 악장은 서울대 국악과와 한예종 예술전문사를 졸업했으며 한양대 대학원에서 음악연주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창작악단 악장이자 대한민국전통예술전승원 이사, 한양대 국악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성인 절반 "어버이날 '빨간날'로 해 주세요"…60대...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